내 식구만 귀한 당신에게 : 어느 리더의 '선택적 가족애'
미디어 속 '보스'는 종종 신화적 존재로 그려진다.
절대적 카리스마로 팀원을 이끌고, 위기 상황에선 기꺼이 자신을 방패 삼아 조직을 수호하는 영웅.
그 맹목적인 지지와 순종은 극적 장치임을 알면서도, 한때는 그런 리더십을 갈망했다.
'저런 리더가 되어 팀원들을 온전히 품고 싶다'
순수하고 뜨거운 열망을 품었던 주니어 시절이 있었다.
곁에서 지켜본 여러 팀장님들은 배우고 닮고 싶은 롤모델이자 멘토였다.
그분들의 그림자를 따르며 키웠던, 말랑하고 달콤했던 꿈과 야망의 새싹.
그러나 그 여린 싹이 무참히 짓밟히고, 시들다 못해 재가 되어버린 시간이 찾아왔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프로젝트가 존재했다.
소위 '알짜배기' 프로젝트 – 장기적이고 느긋하게 진행해도 되며, 세간의 주목과 함께 달콤한 성과가 보장된, 클라이언트마저 신사적인 그런 '친자식' 같은 일들.
반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은 프로젝트들 – 예측 불가능한 요구로 개인의 삶을 잠식하고, 빈약한 예산에 비해 터무니없는 결과물을 요구하며, 어떤 성과도 내세우기 힘든, 그야말로 영혼을 갉아먹는 일들.
전자는 리더의 '오른팔, 왼팔'이라 불리는 이들의 차지였다.
그들은 리더와 끈끈한 유대감을 과시하며 퇴근 후 술잔을 기울였고, 신규 계약이나 해외 출장 같은 핵심 정보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공유되었다.
후자는? 눈 밖에 났거나, 갓 합류하여 아직 '내 사람'으로 분류되지 않은 이들의 몫이었다. 마치 서자나 양자에게 떠넘기듯.
100만 원짜리 프로젝트로 어떤 유의미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성과를 기대하지 않으니 '버리는 카드'에게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묵묵히 소임을 다해도 돌아오는 것은 미미한 보상과 처참한 인사고과.
근본도, 역사도 없는 프로젝트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개인의 영혼을 잠식했다.
몸과 마음은 피폐해지고, '이대로는 정말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 정당한 업무와 역할을 요구하면,
묵살은 기본이요, 온갖 누명을 쓰고 연말 평가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스스로를 향한 의심과 자책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자존감을 난도질했다.
'정말 내가 무능한 걸까?' 그 끝없는 자문자답의 고통.
그러나 경악스럽게도, 이 폭력적인 업무 지시와 부당한 대우를 경험한 것은 나 하나만이 아니었다.
'내가 부족하다'는 교묘한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추악한 민낯이 드러났다.
다행히, 그 리더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랜 시간 동안 차곡차곡 누적되어 왔고,
결국 그는 리더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태산 같은 부조리함 아래 개미 한 마리만큼의 정의가 실현된 셈이다.
물론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식구'를 챙기며 충성심을 확보하고 팀의 동력을 얻었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 새끼 귀하면 남의 새끼도 귀한 줄 알라'는 오랜 지혜는 애당초 그의 사전에 없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지금도 그는 여전히 억울함을 토로하거나, 과거 자신의 행적을 영웅담처럼 포장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