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4 : 리셋
“치료를 시작합니다.”
차가운 금속음과 함께 거대한 기계 팔이 상우(55세)의 등을 눌렀다.
최고급 AI 마사지 체어 ‘힐링 봇 V-9’.
정형외과 전문의 수준의 압력 센서와 온열 기능을 갖춘 이 기계는 상우의 뭉친 근육을 정확히 찾아냈다.
“으윽...”
상우는 신음을 삼켰다. 시원했다.
하지만 묘하게 불쾌했다.
기계의 손길은 '치료’라기보다 '수리’에 가까웠다.
고장 난 부품을 조이고 기름을 치듯, 정확하지만 감정이 없는 손길.
마사지가 끝나면 몸은 풀렸지만, 마음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상우는 거대 IT 기업의 임원이었다.
하루 종일 사람들을 지시하고, 평가하고, 잘라내는 일을 했다.
그는 외로웠다.
아무도 그의 진짜 속마음을 물어봐 주지 않았다.
집에 가도 AI 집사가 "다녀오셨습니까"라고 인사할 뿐, 아내와 딸은 각자의 방에서 VR 게임을 하느라 바빴다.
그는 살과 살이 맞닿는 온기가 그리웠다.
어느 날, 상우는 골목길 구석에 있는 허름한 간판을 발견했다.
약손 지압원 - 100% 수기 관리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부는 촌스러웠다. 낡은 소파, 벽에 걸린 인체 해부도, 그리고 한약 냄새.
주인인 맹인 안마사, 박 씨(60대)가 지팡이를 짚고 나왔다.
“어서 오세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상우는 쭈뼛거렸다.
“어깨가 좀... 결려서요.”
박 씨는 상우를 낡은 베드에 눕혔다.
그리고 투박하고 거친 손으로 상우의 목 뒤를 만졌다.
“아이고, 많이 굳었네. 돌덩이 같아. 무슨 짐을 이렇게 짊어지고 사시나.”
상우는 깜짝 놀랐다.
AI는 "근육 경직도 80%"라고 말했지, "짐을 짊어지고 산다"고 말하지 않았다.
박 씨의 손가락이 뭉친 근육을 꾹 눌렀다.
아팠다.
그런데 그 아픔 뒤에 이상한 따뜻함이 스며들었다.
박 씨의 손바닥 열기가 피부를 뚫고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힘 좀 빼세요. 그렇게 꽉 쥐고 있으면 본인만 힘들어요.”
박 씨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 말은 근육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상우의 인생에게 하는 말 같았다.
상우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박 씨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상우의 몸을 읽고 있었다.
그의 손길은 상우의 어깨뿐만 아니라, 그동안 억눌러왔던 외로움과 슬픔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기계처럼 일정한 리듬이 아니라, 상우의 호흡에 맞춰 강약을 조절하는 불규칙한 리듬.
그것은 대화였다. 말 없는 위로였다.
“제가... 많이 힘듭니다.”
상우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툭,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알아요. 몸이 다 말해주고 있네. 울고 싶으면 울어요. 여긴 보는 사람도 없으니까.”
박 씨는 상우의 등을 토닥였다.
마치 엄마가 아기 배를 문질러주듯이.
상우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죽여 울었다.
박 씨는 묵묵히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그 거친 손의 감촉이, 세상 그 어떤 명품 AI보다 부드럽게 느껴졌다.
1시간 뒤.
상우는 밖으로 나왔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단순히 근육이 풀려서가 아니었다.
마음속 응어리가 녹아내린 덕분이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비서, 내일 오전 스케줄 다 비워. 직원들한테도 반차 쓰라고 해.”
“네? 갑자기 왜...”
“그냥...다들 좀 쉬라고 해. 사람답게.”
상우는 지압원 간판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약손].
그 말이 맞았다.
사람의 손은 약이었다.
데이터로 분석할 수 없는, 오직 체온으로만 전할 수 있는 치유의 힘.
상우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따뜻했다.
그는 이제 이 온기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딸의 손을 잡아줄 생각이었다.
기계가 해주지 못하는, 진짜 아빠의 손길로.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