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 노이즈 캔슬링 해제

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4 : 리셋

by 공감디렉터J


“완벽한 차단. 나만의 세상.”

이어폰 광고 카피처럼, 사람들은 모두 귀를 막고 살았다.
초강력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ing)’ 이어폰은 필수품이었다.
지하철의 소음, 공사장의 굉음, 타인의 말소리, 심지어 빗소리까지...

모든 '원치 않는 소리’는 AI가 실시간으로 지워버렸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음악, 팟캐스트, 혹은 완벽한 정적 속에서만 존재했다.

서연(22세)도 그랬다.
그녀는 24시간 이어폰을 끼고 살았다.
길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도 듣지 못했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몰랐다.
세상은 무성 영화처럼 소리 없이 흘러가는 배경일 뿐이었다.


어느 날, 서연은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좋아하는 아이돌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그녀는 발을 내디뎠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옷깃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서연은 뒤로 넘어졌다.
이어폰이 귀에서 빠져 바닥에 떨어졌다.

끼이이익- 쾅!

바로 눈앞에서 트럭 한 대가 맹렬한 속도로 지나갔다.
신호 위반 트럭이었다.
만약 누군가 잡아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즉사했을 것이다.

서연은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세상의 소리가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트럭의 엔진 소리, 사람들의 비명,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 바람 소리...
그 소리들은 거칠고 시끄러웠지만, 살아있었다.

그녀를 구해준 건 폐지를 줍는 할머니였다.
“학생! 괜찮아? 내가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데 왜 못 들어!”
할머니의 쉰 목소리.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서연은 죽었다.
노이즈 캔슬링이 하마터면 그녀의 목숨까지 캔슬(Cancel)할 뻔한 것이다.


그날 이후, 서연은 이어폰을 끼지 않았다.
처음에는 시끄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도시의 소음은 고문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소음 속에 숨겨진 다른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웃는 소리.
시장 상인들의 활기찬 호객 소리.
비 오는 날 빗방울이 우산에 떨어지는 타닥타닥 소리.
그것들은 음악보다 더 다채롭고 아름다운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퇴근길 버스 안.
서연은 뒷자리에 앉은 여자가 훌쩍이는 소리를 들었다.
예전 같으면 짜증 나는 소음으로 치부하고 볼륨을 높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 울음소리에는 사연이 있었다. 슬픔이 있었다.
서연은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조용히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는 깜짝 놀라 서연을 쳐다봤다.
“감사합니다...”
그 작은 목소리.
그 한마디에 두 사람 사이에 따뜻한 연결고리가 생겼다.
서연은 깨달았다.
우리가 소음을 차단하면서, 타인의 고통과 감정까지 차단하고 있었다는 것을.


서연은 ‘노이즈 캔슬링 해제’ 모임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모여 이어폰을 빼고 함께 걷는 모임이었다.
그들은 숲으로 가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계곡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서로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기계가 걸러주지 않은, 떨리고 투박한 진짜 목소리.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 줄 몰랐어요.”
한 회원이 웃으며 말했다.
“네. 그래서 외롭지 않아요.”
서연이 대답했다.

완벽한 정적은 평화가 아니라 고립이었다.
우리는 소음 속에서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서연은 이제 이어폰 대신 자신의 귀를 믿기로 했다.
세상이 들려주는 진짜 이야기는, 플레이리스트 어디에도 없는 '라이브’였으니까.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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