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4 : 리셋
2099년 12월 31일.
인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디지털 대청소(Great Digital Reset)’.
지난 1세기 동안 AI와 데이터에 종속되어 살아온 인류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편리함은 무기력함을 낳았고, 연결은 고독을 심화시켰으며, 영생을 꿈꾸던 기술은 삶의 의미를 지워버렸다.
그래서 전 세계 정상들은 합의했다.
모든 AI 서버와 디지털 기록을 우주로 쏘아 보내고, 지구에는 최소한의 기술만 남기기로.
‘리셋’ 버튼을 누르는 날이었다.
밤 11시 50분.
거대한 우주선 '아카이브 호’가 발사 준비를 마쳤다.
그 안에는 인류가 지난 100년간 쌓아온 모든 데이터가 들어 있었다.
SNS 피드, 금융 거래 내역, AI 알고리즘, 가상 현실 세계...
모든 디지털 문명이 지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 세계의 불이 꺼졌다.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전광판도 모두 먹통이 되었다.
세상은 100년 만에 처음으로 완벽한 어둠에 잠겼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다.
손에는 스마트폰 대신 촛불과 랜턴을 들고 있었다.
서울 한강 공원에도 수만 명의 인파가 모였다.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표정은 묘하게 들떠 있었다.
광장 중앙에 거대한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누군가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마이크도 앰프도 없는 생(生)소리였다.
사람들은 불 주위에 둘러앉았다.
“이제 진짜 끝인가요?”
한 아이가 물었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이제 진짜 시작이란다.”
11시 59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기계음이 아닌, 사람들의 육성으로.
“십! 구! 팔!..”
아카이브 호가 거대한 불기둥을 뿜으며 하늘로 솟구쳤다.
인류의 '디지털 자아’들이 우주 저 너머로 사라지는 장엄한 장례식이자, 새로운 출발식이었다.
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듯 빛나고 있었다.
인공위성과 드론의 불빛이 사라지자, 태고의 별빛이 다시 지구를 비추기 시작한 것이다.
“삼! 이! 일!”
“해피 뉴 이어!”
환호성과 함께 사람들이 서로를 껴안았다.
메신저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모티콘을 보내는 대신,
직접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체온을 나누며 인사했다.
모닥불 타닥거리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렸다.
사람들은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검색하면 1초 만에 나오는 지식이 아니라,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청년들이 꿈꾸는 미래, 아이들의 엉뚱한 상상이 공기를 채웠다.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지 않을, 오직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을 이야기들.
한 연인이 서로에게 물었다.
“우리 사진 안 찍어? 남겨야지.”
“아니. 눈으로 찍자. 마음에 남기자. 그게 영원하니까.”
그들은 핸드폰을 드는 대신 서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 속에 비친 모닥불이 세상 어떤 고해상도 화면보다 아름다웠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태양이 떠오르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불을 껐다.
전기가 없어도 세상은 충분히 밝았다.
새들이 지저귀고, 강물이 흐르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인류는 0과 1의 세계에서 로그아웃했다.
그리고 흙과 바람, 살과 피가 있는 진짜 세상으로 로그인했다.
조금 불편하고, 느리고, 불완전할지라도,
우리는 다시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지구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엔딩 크레딧은 올라가지 않았다.
대신,
Chapter 2. Human
이라는 새로운 막이,
가장 찬란한 아침 햇살과 함께 시작되고 있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