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4 : 리셋
한강공원 잔디밭.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텅 비어 있었다.
초점은 허공을 향해 있었고, 입은 살짝 벌어져 있었다.
마치 단체로 최면에 걸린 듯한 기묘한 풍경.
[제10회 세계 멍 때리기 대회]
참가자들의 머리에는 뇌파 측정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심박수가 안정적이고, 뇌파가 '알파파(이완 상태)'를 오래 유지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스마트폰을 보거나, 졸거나, 웃거나, 딴생각을 하면 탈락이다.
이번 대회의 우승 후보는 뜻밖의 인물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IT 기업 CEO, 강철민(45세).
그는 '워커홀릭’의 대명사였다.
하루 20시간 일하고, 4시간 자면서도 꿈속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의 뇌는 슈퍼컴퓨터처럼 1초도 쉬지 않고 돌아갔다.
그런 그가 왜 이곳에 있는가?
“살고 싶어서 왔습니다.”
인터뷰에서 철민이 한 말이었다.
그는 번아웃 증후군 말기였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뇌가 과부하로 셧다운(Shutdown)된 것이다.
의사는 경고했다.
“뇌를 비우지 않으면, 뇌가 당신을 지워버릴 겁니다.”
대회가 시작되었다.
철민은 눈을 반쯤 감고 강물을 바라보았다.
처음 10분은 지옥이었다.
습관적으로 손이 꿈틀거렸다. 이메일을 확인해야 할 것 같고, 주가를 체크해야 할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잡념이 폭죽처럼 터졌다.
‘내일 이사회 안건은...’, ‘신제품 출시일이...’, ‘점심 뭐 먹지...’
하지만 철민은 억지로 생각을 끊어냈다.
‘아무것도 안 한다. 나는 돌이다. 나는 강물이다.’
30분이 지났다.
옆자리에 앉은 대학생이 탈락했다. 잡념을 이기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꺼냈기 때문이다.
철민의 호흡이 느려졌다.
시야가 흐릿해지면서 강물의 물결만이 망막에 맺혔다.
그때, 주최 측에서 준비한 '방해 공작’이 시작되었다.
AI 로봇들이 돌아다니며 참가자들을 유혹했다.
“속보입니다! 비트코인 20% 급락!”
“당신의 전 애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참가자들이 동요했다.
심박수가 치솟고 뇌파가 붉게 변했다.
하지만 철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비트코인이 폭락하든, 회사가 망하든, 지금 이 순간 그는 '존재’할 뿐 '생각’하지 않았다.
1시간 경과.
철민의 뇌파 모니터가 기이한 패턴을 보이기 시작했다.
알파파를 넘어, 깊은 명상 상태인 '세타파’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수면과 각성 사이, 무의식의 경계였다.
철민은 이상한 경험을 했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자, 그 빈 공간으로 새로운 것들이 들어왔다.
강바람의 시원함, 풀벌레 소리, 옆 사람의 숨소리, 그리고 햇살의 따뜻함.
데이터로 처리하느라 놓쳤던 세상의 질감들이 4D 영화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는 깨달았다.
그동안 자신은 세상을 ‘산’ 게 아니라 '처리’하고 있었구나.
정보를 먹어 치우느라, 맛을 느낄 겨를이 없었구나.
뇌가 맑아졌다.
마치 포맷된 하드디스크처럼 깨끗하고 가벼워졌다.
그 텅 빈 공간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 기술은 사람을 편하게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야 하는 거였어.’
“우승자는...56번 강철민 님!”
폭죽이 터졌다.
철민은 멍하니 있다가 트로피를 받았다.
그의 얼굴은 10년은 젊어 보였다.
그날 이후, 철민의 회사는 변했다.
‘점심시간 2시간 보장’, ‘주말 업무 금지’, 그리고 사내에 '멍 때리기 룸’을 만들었다.
직원들은 처음엔 미친 짓이라 했지만, 곧 회사의 매출은 더 올랐다.
잘 쉬는 뇌가 더 잘 일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철민은 이제 주말마다 한강에 나간다.
스마트폰은 집에 두고, 돗자리 하나만 들고.
그는 강물을 보며 멍하니 앉아 있는다.
지나가던 AI 로봇이 묻는다.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데이터 분석 중입니까?"
철민은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아니, 충전 중이야. 인간적인 방식으로.”
가장 바쁜 시대, 가장 게으른 시간이 그를 구원했다.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역설의 미학.
그것이 아날로그가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