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빈티지 러브

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4 : 리셋

by 공감디렉터J


“당신에게 딱 맞는 짝을 찾아드립니다. 매칭 성공률 99.9%.”

데이팅 앱 '큐피드 AI’의 광고 문구였다.
이 앱은 사용자의 DNA, 연봉, 성격 유형(MBTI), 소비 패턴, 심지어 부모님의 병력까지 분석해 '최적의 배우자’를 추천해준다.
사람들은 더 이상 소개팅에서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며 상대를 탐색하지 않았다.
앱이 "이 사람이 당신의 운명입니다"라고 하면, 그냥 만나서 결혼하면 됐다. 실패 없는, 효율적인 사랑.

하지만 서준(30세)은 이 앱을 지워버렸다.

그는 AI가 추천해준 여자와 3번이나 만났지만, 아무런 설렘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들은 서준과 스펙도, 취미도, 식성도 완벽하게 일치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너무 잘 맞아서 지루했고, 예측 가능해서 숨이 막혔다.

“이건 사랑이 아니야. 그냥 스펙 거래지.”


어느 비 오는 날, 서준은 우산도 없이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그때, 한 여자가 뛰어 들어왔다.
그녀의 이름은 미소(29세).
그녀는 젖은 머리를 털며 서준 옆에 섰다.
그녀의 가방에서는 젖은 책 냄새와 은은한 커피 향이 났다.
그리고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서준이 제일 싫어하는 장르인 '뽕짝’이었다.

서준은 힐끔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의 옷차림은 서준의 취향과 정반대인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였다.
모든 게 안 맞았다.
만약 큐피드 AI였다면 [매칭 확률: 0.1% - 절대 만나지 마시오]라고 붉은 경고등을 띄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심장이 뛰었다.
그녀가 빗물 묻은 안경을 닦으며 찡그리는 표정이,
뽕짝 리듬에 맞춰 발을 까딱거리는 모습이,
이상하게 귀엽고 신경 쓰였다.

버스가 왔다. 만원 버스였다.
서준과 미소는 사람들에 밀려 서로 밀착하게 되었다.
서준은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팔로 보호해주었다.
미소가 고개를 들어 서준을 봤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쿵.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데이터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전기가 통하는 느낌.
페로몬? 호르몬? 아니면 전생의 인연?

알고리즘은 모르는 '변수’가 작동한 것이다.

“저기... 혹시 뽕짝 좋아하세요?”
서준이 멍청하게 물었다.
미소는 빵 터졌다.
“아뇨, 사실 이거 저희 할머니 벨 소리 연습하는 건데... 이상했어요?”


두 사람은 버스에서 내려 카페로 갔다.
대화는 엉망진창이었다.
취미도 다르고, 성격도 정반대였다.
서준은 계획적인 J형이었고, 미소는 즉흥적인 P형이었다.
서준은 스테이크를 좋아했고, 미소는 비건이었다.
싸울 거리가 천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밤새도록 떠들었다.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궁금했고, 이해하고 싶었고, 싸우면서 정들었다.
AI가 추천해준 '완벽한 타인’보다,
이 '불완전하고 제멋대로인 여자’가 서준의 우주를 뒤흔들었다.


1년 뒤.
서준과 미소는 결혼했다.
결혼식장에는 큐피드 AI의 개발자인 서준의 친구가 왔다.
그는 두 사람의 데이터를 몰래 분석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야, 너네 데이터상 궁합 점수가 12점이야. 이혼 확률 98%라고. 진짜 결혼할 거야?”

서준은 미소의 손을 꼭 잡으며 웃었다.
“응. 우린 그 2%의 기적을 믿어보려고.”


그들은 매일 싸운다.
치약 짜는 걸로 싸우고, TV 채널권으로 싸운다.
하지만 싸우고 나서 화해할 때의 포옹이 얼마나 따뜻한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맞춰가는 과정이 얼마나 성숙한 사랑인지 그들은 배웠다.

신혼여행 가는 비행기 안.
서준은 큐피드 AI 앱을 다시 깔아보았다.
그리고 미소의 프로필을 입력해봤다.
[매칭 불가. 시스템 오류. 이 데이터는 분석할 수 없습니다.]

서준은 폰을 끄고 미소의 어깨에 기대 잠들었다.
기계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사랑은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함께 오답을 써 내려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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