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4 : 리셋
“이게... 사과라고요?”
도심형 스마트팜 마켓.
말끔한 정장을 입은 주부 지현(35세)이 진열된 사과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사과는 완벽한 구(球)형이었고, 표면은 왁스를 바른 듯 매끈했으며, 색깔은 포토샵으로 보정한 듯 균일한 빨간색이었다.
당도: 14Brix, 산도: 0.3%, 크기: L사이즈(오차범위 1mm)
모든 사과가 복제된 듯 똑같았다.
이것은 흙이 아닌 '배양액’에서 자랐고, 햇빛 대신 'LED 조명’을 받고 자란, 공산품에 가까운 과일이었다.
지현은 사과 하나를 집어 들었다.
향기가 나지 않았다.
아니, 소독약 냄새가 아주 미세하게 났다.
아이의 아토피가 심해진 이유가 이 깨끗하기만 한 '죽은 음식’들 때문은 아닐까, 그녀는 늘 의심스러웠다.
주말, 지현은 가족들을 데리고 교외로 나갔다.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도착한 곳은 ‘할머니의 텃밭’.
이곳은 스마트팜 기업들의 매수 제안을 끝까지 거절하고, 전통 농법을 고수하는 마지막 농가 중 하나였다.
“어서 오슈.”
허리가 굽은 김 노인이 흙투성이 손을 털며 맞이했다.
텃밭은 엉망이었다.
잡초가 무성했고, 벌레들이 윙윙거렸다.
채소들은 제멋대로 자라 있었다. 오이는 휘어졌고, 토마토는 터져 있었으며, 깻잎에는 벌레 먹은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도시에서 온 아이들은 기겁했다.
“으아, 엄마! 벌레야! 더러워!”
지현의 딸 수아(7세)가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김 노인은 껄껄 웃으며 밭에서 방금 딴 당근을 옷에 대충 슥슥 문질러 수아에게 내밀었다.
“먹어봐라. 이게 진짜여.”
지현은 망설였다.
세균은 없을까? 흙은 다 털린 건가?
하지만 노인의 눈빛이 너무나 맑아서,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수아야, 한 입만 먹어볼까?”
수아는 찡그린 얼굴로 당근을 베어 물었다.
아작-
순간,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엄마... 이거 달아!”
설탕의 단맛이 아니었다.
흙이 품고 있던 깊고 진한 단맛, 그리고 알싸한 흙내음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마트에서 파는 물렁하고 싱거운 당근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생명의 맛이었다.
지현도 토마토 하나를 따서 먹었다.
톡 터지는 껍질 속에서 붉은 과즙이 흘러내렸다.
새콤하고, 달콤하고, 짭조름하기까지 한 복합적인 맛.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에서 먹던 그 맛이었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혀끝에서 되살아났다.
“할아버지,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요?”
수아가 물었다.
김 노인은 흙 묻은 손으로 땅을 가리켰다.
“이 땅이 살아있어서 그래. 스마트팜 놈들은 영양제만 주지?
나는 이 땅한테 똥도 주고, 낙엽도 주고, 기다림도 줘.
그리고 벌레 놈들도 좀 나눠 먹으라고 냅두지.
경쟁하고, 싸우고, 견뎌낸 놈들만이 이런 맛을 내는 거야.”
편하게 자란 것들은 맛이 없다.
비바람을 맞고, 벌레와 싸우며 살아남은 것들만이 진짜 향기를 품는다.
그것은 채소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통용되는 진리였다.
그날 저녁, 지현의 가족은 텃밭에서 가져온 '못난이 채소’들로 밥상을 차렸다.
구멍 뚫린 상추에 밥을 싸 먹으며, 가족들은 오랜만에 대화를 나눴다.
“아빠, 나도 이제 편식 안 할래.”
“여보, 다음 주에 또 가자.”
식탁 위에는 흙 묻은 감자가 놓여 있었다.
그 못생긴 감자가, 반짝거리는 스마트폰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지현은 감자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건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그리고 생명력 그 자체였음을.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