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4 : 리셋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전석 매진. 암표 가격이 10배나 치솟았다.
무대 위에는 최첨단 로봇 연주단 '아폴로(Apollo)'가 앉아 있었다.
지휘자 역시 로봇이었다.
그들의 연주는 완벽했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의 템포, 강약, 음정 모든 것이 악보에 기재된 데이터 그대로였다.
0.001초의 오차도 없는 활 놀림, 기계적인 정확성으로 뿜어내는 웅장한 사운드.
관객들은 숨죽여 감상했다.
하지만 연주가 끝나고 박수가 터져 나왔을 때,
객석 맨 뒷줄에 앉아 있던 노마에스트로 '강현(70세)'은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소리는 완벽한데... 음악은 없군.”
강현은 평생을 지휘봉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AI 연주자들이 등장하면서 인간 오케스트라는 해체되었다.
인간은 실수를 한다. 삑사리를 내고, 박자를 놓치고, 컨디션에 따라 연주가 달라진다.
대중은 '결점 없는 완벽함’을 원했고, 기계들은 그 욕망을 충족시켰다.
이제 인간 연주자는 거리의 버스커로 전락하거나 악기를 팔아치워야 했다.
강현은 창고를 뒤져 먼지 쌓인 지휘봉을 꺼냈다.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모집] ‘불완전한 오케스트라’ 단원 모집.
자격 요건: 인간일 것. 실수할 용기가 있을 것.
사람들이 모였다.
한때 첼로 수석이었지만 로봇에게 밀려나 택배 기사가 된 남자.
바이올린을 켜다가 손가락 관절염으로 은퇴한 할머니.
음대를 나왔지만 AI 작곡 프로그램만 돌리고 있는 청년 백수.
그들은 모두 패배자였고, 상처 입은 영혼들이었다.
첫 연습 날.
소리는 엉망이었다.
호른은 음이 뒤집혔고, 바이올린은 끽끽거렸으며, 팀파니는 박자를 놓쳤다.
로봇 연주에 익숙해진 그들의 귀에 자신들의 소리는 소음처럼 들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또 틀렸어요...”
첼로 주자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강현은 지휘봉을 멈추지 않고 미소 지었다.
“괜찮아. 계속해. 우린 기계가 아니잖아.”
강현은 그들에게 '정확성’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감정’을 요구했다.
“자네가 택배 상자를 나르며 느꼈던 그 무게감을 활에 실어봐.”
“할머니, 손가락이 아픈 만큼 더 절실하게 켜세요. 그 통증이 음악이 됩니다.”
연습이 거듭될수록 기적이 일어났다.
그들의 삑사리는 더 이상 실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절규였고, 한숨이었고, 흐느낌이었다.
기계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고통과 삶의 질감이 묻어나는 소리.
불협화음 속에서 기묘한 조화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공연 날.
장소는 화려한 대극장이 아닌, 한강 공원의 야외 무대였다.
관객은 지나가던 시민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 그리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몇몇 호기심 많은 이들이었다.
강현이 지휘봉을 들었다.
곡명은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장엄한 선율이 강바람을 타고 흘렀다.
연주는... 여전히 불안했다.
바이올린 줄이 끊어지기도 했고, 관악기 주자가 숨이 차서 음을 놓치기도 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들의 연주에는 피 냄새가 났다.
땀 냄새가 났다.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의 냄새가 났다.
클라이맥스 부분.
모든 악기가 포효하듯 소리를 쏟아냈다.
로봇 오케스트라의 매끈한 사운드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칠고 투박한 에너지가 관객들의 가슴을 때렸다.
그것은 "나 여기 살아있다! 나 아직 쓸모없지 않다!"라고 외치는 인간들의 합창이었다.
강현의 지휘봉이 허공을 갈랐다.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단원들도 울면서 연주했다.
관객들도 울었다.
마지막 음이 끝나고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터져 나온 함성.
“브라보!”
그것은 완벽한 연주에 대한 찬사가 아니었다.
불완전한 우리 자신에 대한 위로와 격려였다.
공연이 끝나고, 한 꼬마 아이가 강현에게 다가왔다.
“할아버지, 아까 삑 소리 났는데... 그게 제일 슬프고 좋았어요.”
강현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래. 그게 바로 사람이란다. 틀려도 괜찮은 거, 아파도 계속하는 거.”
강바람이 찼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그날 밤, 서울의 야경 속에서 가장 빛난 건 네온사인이 아니라,
낡은 악기를 품에 안은 사람들의 젖은 눈동자였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