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프트 (The Prompt) 시즌4 : 리셋
“메시지 전송 완료. 수신 확인.”
현대인들은 1초도 기다리지 못한다.
‘읽음(1)’ 표시가 사라지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답장이 3분 늦으면 화를 낸다.
사랑 고백도 톡으로 하고, 이별 통보도 이모티콘 하나로 끝내는 세상.
감정의 무게는 데이터 전송 속도만큼이나 가벼워졌다.
이런 세상에서 민우(32세)는 자전거를 탔다.
그의 가방에는 두툼한 편지 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의 직업은 ‘슬로우 포스트맨(Slow Postman)’.
디지털 통신망을 거부하고, 오직 아날로그 손편지만을 배달하는 서비스였다.
“안녕하세요, 편지 왔습니다.”
민우가 벨을 누른 곳은 낡은 빌라였다.
문을 연 여자는 혜진(28세). 그녀는 3년 전 유학을 떠난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 중이었다.
영상 통화도, 메신저도 가능한 시대였지만, 두 사람은 약속했다.
“우리, 서로에게 닿는 시간을 좀 늦추자. 너무 빨리 닿으면 너무 빨리 식을까 봐 겁나.”
혜진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 봉투를 받았다.
봉투에서는 희미하게 남자친구의 향수 냄새가 났다.
그리고 꼬깃꼬깃한 종이의 질감.
그녀는 봉투를 뜯지 않고 가슴에 품었다.
이 편지는 태평양을 건너오느라 2주가 걸렸다.
그 2주 동안 혜진은 매일 우편함을 확인하며 설레었고, 걱정했고, 그리워했다.
그 기다림의 시간들이 편지 한 통에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혜진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민우는 다시 페달을 밟았다.
이번 배달지는 요양 병원이었다.
수신인은 치매 초기 증상을 앓고 있는 박 노인.
발신인은 50년 전 죽은 그의 아내였다.
사실 이 편지는 아내가 죽기 전, "내가 죽고 나면 매년 내 생일마다 남편에게 한 통씩 전해달라"며 맡겨둔 예약 편지였다.
민우는 그 약속을 10년째 지키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편지 왔어요.”
박 노인은 흐릿한 눈으로 편지를 받았다.
그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
민우가 대신 읽어주었다.
“여보, 잘 지내요? 밥은 챙겨 먹고? 나 먼저 가서 미안해. 그래도 봄 되면 꽃구경 꼭 가요. 내가 나비 되어서 따라갈 테니까...”
박 노인은 엉엉 울었다.
“아이고... 임자... 왔어? 나 두고 어디 갔어...”
그는 편지지를 뺨에 비볐다.
종이에 묻어 있는 잉크 자국, 아내의 삐뚤빼뚤한 글씨체.
그것은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데이터가 흉내 낼 수 없는 '영혼의 흔적’이었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민우는 한강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때, 스마트폰을 들고 싸우는 커플이 보였다.
“야! 너 왜 아까 내 톡 읽씹했어?”
“아니, 회의 중이었다니까! 넌 나를 못 믿어?”
“됐어, 헤어져!”
단 10분의 침묵을 견디지 못해 인연을 끊어버리는 사람들.
민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들에게 사랑은 '접속 상태’일 뿐이었다.
민우는 가방에서 만년필과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짝사랑하는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썼다 지우고, 다시 쓰고.
종이는 잉크와 땀으로 얼룩졌다.
'사랑해’라는 세 글자를 적는 데 1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편지가 그녀에게 닿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민우는 그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그는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덜컹.
소리와 함께 편지가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이제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답장이 올지, 안 올지 모른다.
하지만 답장이 오지 않는 시간조차도 사랑의 일부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빠름이 미덕인 세상에서,
느림은 가장 낭만적인 저항이자,
진심을 숙성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민우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의 등 뒤로 노을이 붉게 번지고 있었다.
내일도 그는 누군가의 설렘과 눈물을 싣고,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달릴 것이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