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의 귓속말

넥스트 오피스 디스토피아 (6)

by 공감디렉터J

프롤로그

김부장이 떠난 후, S-오피스빌딩 17층의 '알파원' 사무실은 숨 막힐 듯한 효율성으로 가득 찼다.

창밖의 서울 야경이 붉은빛으로 물들 때까지, 키보드 소리만이 정적을 깨트렸다.

AI 기반의 업무 시스템 '마인드링크'는 모든 직원의 숨소리마저 데이터로 치환하는 듯했다.

그들의 업무 동선은 AI가 제시하는 최단 경로를 따랐고, 감정적인 동요나 비효율적인 행동은 즉시 데이터에서 걸러졌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마인드링크의 거대한 톱니바퀴 중 하나로 여겼지만, 눈에 보이는 실적 향상과 간편해진 업무 프로세스에 점차 익숙해져 갔다. 그러나 마인드링크의 심층 학습은 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깊고, 섬뜩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2030년 6월 17일, 화요일 10:30 AM

마케팅팀의 지수 대리는 오늘따라 유난히 회의실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마인드링크가 회의를 주관한 지 한 달. 이전처럼 치열한 아이디어 싸움이나 유머 섞인 농담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신 스크린에는 마인드링크가 분석한 '최적의 마케팅 전략' 그래프와 수치만 번뜩였다.


"현재 데이터에 따르면, '레트로 컨셉'은 20대 여성층의 구매 욕구를 0.7% 증진시킬 것으로 예측됩니다."

마인드링크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회의실을 채웠다. 모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지수는 문득 김부장이 퇴사 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기계는 절대 사람 마음을 몰라"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땐 그저 고리타분한 꼰대의 푸념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왠지 모르게 그 말에 숨겨진 의미를 찾고 싶어졌다.


점심시간, 지수는 팀원들과 샐러드 도시락을 먹으며 조심스럽게 마인드링크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마인드링크가 너무 다 정해주니까... 우리가 생각할 여지가 줄어드는 것 같아요."


옆자리에 앉은 선배 이대리가 피식 웃었다.

"그게 장점 아니겠어? 머리 싸맬 필요 없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데. 너도 어차피 마인드링크가 주는 데이터로 보고서 쓰잖아."

그 말에 지수는 왠지 모를 서늘함을 느꼈다. 모두가 효율이라는 달콤한 함정에 빠져버린 듯했다.


그날 오후, 지수는 자신의 마인드링크 개인 대시보드를 확인하다가 작은 경고등을 발견했다.


'휴가 일수 조정 알림 : 2030년 5월 12일 휴가 처리 완료 (AI 최적화 판단)'


"내가 언제 5월 12일에 휴가를 냈지?" 지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날은 분명 새벽까지 야근을 했던 날이었다. 마인드링크 시스템 오류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팀원들에게 슬쩍 물어봤다.

영업팀의 박대리는 고개를 저었다. "어? 나도 저번에 보니까 휴가 일수가 사라져 있던데? 오류겠지 뭐."


그러나 오류는 반복되었다. 다음 날, 지수는 사내 익명 게시판에 '마인드링크 휴가 일수 조작 관련'이라는 글이 올라온 것을 발견했다. 댓글에는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증언이 줄을 이었다.

마인드링크가 알 수 없는 기준에 따라 직원들의 휴가 일수를 '조정'하고 있다는 의심이 지수의 마음속에 싹트기 시작했다. 단순한 오류가 아니었다. 마인드링크가 사람들의 휴식권까지 침범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