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복사 능력자, 미국에서 캐롤을 만나다
언어 복제, 그 달콤한 유혹
난생 처음 밟아보는 미국 땅, 워싱턴 D.C.였다.
얼마 전, 나의 특별한 능력 덕분에 얻게 된 영어 자격증이 이번 출장의 빌미가 되었다.
'복사' 능력.
보고 듣는 모든 것을 복사하는 일시적 능력.
그때 그 순간뿐이라 지금 내 머릿속은 백지 상태나 다름없다.
글로벌 제약회사에 우리 회사의 약물주입펌프를 소개하고 계약을 따내는 중책.
마케팅부서지만, 어쩌다 이렇게 영어 '능력자'로 오해를 받아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건지.
꼬리뼈의 비명, 그리고 피자 한 조각
비행기 옆 좌석의 러시아 부부는 끊임없이 기내용 양주를 들이켰고, 나는 좁은 좌석에서 꼬리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신음했다.
몇 번의 졸도 끝에 간신히 공항에 도착, 거대한 제약회사 본사 앞에 섰다.
배고픔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눈앞에 피자집을 발견하고 눈이 번쩍 뜨였다.
종이쟁반에 커다란 기름진 피자 한 조각을 받아들고 서둘러 미팅 발표 자료를 꺼냈다.
시간이 촉박했다. 그런데… 이 피자, 정말이지 환상적인 맛이었다!
'빨리 먹고, 잠깐이라도 영어 능력을 복사해야 하는데!'
혀와의 이별
바로 그 순간, 뼈를 씹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귀에 꽂혔다. 곧이어 형언할 수 없는 통증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천천히 퍼져나가는 불쾌한 쇠 맛.
혀를 씹었다!
역대급으로 깊숙하게. 뱀처럼 혀가 두 갈래로 갈라진 듯한 끔찍한 느낌. 눈물이 핑 돌았다.
계약 성공의 기쁨으로 눈물을 흘리고 싶었는데, 피자 먹다 혀를 잃고 흘리는 눈물이라니!
낯선 회의실, 그리고 금발의 그녀
엄격한 보안 검색과 복잡한 방문 절차를 거쳐 넓지만 어딘가 오래된 느낌의 회의실에 들어섰다.
잠시 후, 경쾌한 구두 소리가 울리며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검은색 치마 정장, 눈부시게 흰 셔츠, 작은 얼굴에 단정하게 묶은 금발 머리.
"안뇽하쎄요!"
반가운 한국말 인사에 순간 긴장이 풀렸지만, 그것도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건네받은 명함에는 '홍보 담당 매니저 캐롤'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만나기로 한 부사장은 아니었다.
복사 능력, 남은 시간은 단 한 시간
시간을 확인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여기까지 오는 데 5시간이나 걸렸다. 경험상 나의 복사 능력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이제 1시간 남짓. 부사장을 빨리 만나야 한다.
"When will the vice president arrive?"
캐롤이 미간을 찌푸린다.
'왜지? 내가 말을 잘못했나?'
잘린 혀는 이미 퉁퉁 부어 올라 있었다.
혀를 씹었습니다… 발음이 이상해도 이해해주세요
"I'm sorry, but I just chewed my tongue while I was in a hurry because I heard that the pizza here is really good. I ask for your understanding even if my pronunciation is weird(죄송합니다만, 이곳 피자가 정말 맛있다고 해서 조금 전에 급하게 먹다가 혀를 씹었습니다. 발음이 이상해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캐롤이 웃었다.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혀의 통증도 멎는 듯했다. 자신감이 샘솟았다.
캐롤, 그녀는 나의 구원자
부사장 마이크와의 미팅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캐롤의 미소는 큰 힘이 되었다. 게다가 캐롤은 미팅 내내 내가 놓친 부분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도움을 주었다. 상냥한 캐롤. 친절한 캐롤.
호텔에서의 만남?
로비까지 따라 나온 캐롤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Where did you get the hotel?"
공항 근처에 숙소를 예약했다고 답했다.
"I know the hotel well. The room is a little small, but it's a very cozy and friendly place"
출장이 잦은 탓인지, 캐롤은 호텔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혹시 호텔 근처에 저녁 먹을 곳을 추천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I'll be there in the evening. How about 7 p.m.?"
머릿속은 이미 메리 크리스마스!
'내가 묵는 호텔로 저녁 7시에 온다구?'
캐롤이 다시 한번 웃었다. 상냥한 캐롤. 친절한 캐롤.
내 머릿속은 이미 온통 메리 크리스마스 캐럴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