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스릴러 소설 the Trap (6)
지안이 겪는 좌절감은 비단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퀀텀 코어 내부에서는 이미 오랜 기간 동안 핵심 인재들의 이탈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혁신적인 연구를 지향하는 젊은 박사급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는 회사의 경직된 문화와 경영진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다.
‘J-랩’의 초기 멤버이자, 지안과 함께 ‘시냅스’ 프로젝트의 핵심 알고리즘 개발을 담당했던 AI 아키텍처 전문가 김민준 박사는 퀀텀 코어의 미래를 밝게 보던 사람이었다. 그는 지안만큼이나 열정적이었고, 시냅스 칩의 가능성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둘은 주말에도 연구실에 남아 밤샘 토론을 벌이며 기술적 난제를 해결해나가곤 했다.
어느 날 오후, 김민준 박사가 지안의 연구실로 찾아왔다. 그의 표정은 어둡고 지쳐 보였다.
“지안 박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민준 박사는 조심스럽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그것은 그의 사직서였다.
“제가...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싱가포르에 있는 ‘사이파이 테크(Sci-Fi Tech)’로 가게 될 것 같습니다.”
지안은 충격을 받았다.
사이파이 테크는 최근 엣지 AI 분야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스타트업으로, 퓨전 테크와 함께 엣지 AI 시장을 양분하며 퀀텀 코어를 위협하고 있는 경쟁사였다.
“민준 박사님,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시냅스’ 프로젝트는 이제 막 중요한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박사님이 없으면... 저희 팀에 큰 타격입니다.”
민준 박사는 씁쓸하게 웃었다. “저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안 박사님과 함께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못 버티겠습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지안 박사님도 느끼시겠지만, 이곳은 기술의 가치보다 ‘예산’, ‘납기’, ‘보고’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입니다. 제 아무리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도, ‘선례가 없다’, ‘위험하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번번이 묵살당합니다. 얼마 전 제가 제안했던 ‘양자 컴퓨팅 기반의 AI 칩 설계 최적화’ 연구도 결국 예산 문제로 보류되지 않았습니까? 기술적 타당성이나 미래 가치에 대한 논의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재무적 관점에서만 ‘안전한’ 길만 선택합니다.”
민준 박사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최고 경영진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는 분명히 2년 전부터 엣지 AI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했고, 데이터센터용 AI 칩의 지나친 의존도를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의견을 무시하고, 결과적으로 시장의 기회를 통째로 날려버렸습니다. 이제 와서 퓨전 테크의 뒤를 쫓으라고요? 너무나 무책임하고, 절망적입니다.”
그는 이어, 몇 년 전 퀀텀 코어가 개발 중이던 차세대 고성능 D램, 일명 ‘블랙홀 D램(Black Hole DRAM)’ 프로젝트의 실패 사례를 언급했다. 당시 R&D 조직에서는 설계 상의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하고 양산 연기를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하지만 경영진은 경쟁사와의 ‘출시 시기 경쟁’에만 몰두하여 현장의 우려를 묵살하고 양산을 강행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블랙홀 D램은 치명적인 오류로 인해 대량 리콜 사태를 겪었고, 퀀텀 코어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시장의 신뢰마저 잃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많은 핵심 인력들이 회사를 떠났다고 민준 박사는 덧붙였다.
“저는 더 이상 이곳에서 저의 열정과 꿈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이파이 테크는 규모는 작지만, 저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과감하게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기술’이 존중받는다고 합니다.”
지안은 민준 박사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의 눈빛에서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단호함을 읽었다.
민준 박사는 퀀텀 코어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진정한 브레인 중 한 명이었다.
그마저 떠난다면, ‘시냅스’ 프로젝트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민준 박사가 떠나던 날, 지안은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의 어깨는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홀가분해 보였다.
지안은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황금 새장 속에서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동료의 이탈은 단순한 인력 손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퀀텀 코어의 미래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알리는 거대한 경고음이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