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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모 Mar 01. 2019

69th 베를린 국제 영화제-베를린의 아이들

그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

베를린의 아이들에게 베를린 국제 영화제는 놀이터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는 처음이었다. 일이 생기기를 바라거나 자비를 내서라도 가야지 했지만 나의 의지박약이었는지 성사되진 않았다. 어쨌든 백수가 된 후 드디어 나의 첫 번째 베를린 영화제 방문이 이루어졌다. 눈이 휘둥그레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신세계는 따로 있었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를 견학 온 아니 즐기러 온 단체 학생들이었다. 선생님의 고함소리는 한국이나 독일이나 똑같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지만 까르르 넘어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잡담 소리를 누르기엔  역부족인 듯했다.

아이들은 로비에 앉아 대기한 후 시간에 맞춰 시사회장에 들어갔다. 나랑 같은 영화를 보는 건 아니겠지.. 내심 걱정이 됐다.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나는 내가 볼 영화가 맞나 다시 확인했다.

맞다

Generation 섹션의 영화를 예매했는데 Generation 섹션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으로 그린 영화들로 아이들도 볼 수 있는 영화들만을 선정한다. Generation 섹션 안에는 Kplus와 14Kplus로 나뉘는데 Kplus는 11-14살 사이의 아이들이 14Kplus는 14-18살 아이들이 패널로 참여하여 영화의 수상 여부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영화의 스토리만 보고 예매했던지라 섹션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그리고 이렇게 어마한 인파의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그림은 상상하지 않았다.)

아이들로 북적북적한 시사회장 로비/극장마다 서 있는 베를린 영화제 마스코트

영화는 아이들을 위해 더빙으로 상영된다.  

14Kplus는 조금 큰 아이들 대상이라 자막으로 상영되지만 내가 본 영화는 Kplus로 친절한 독일 여성 성우의 더빙으로 모든 대사를 아이들이 따라오기에 쉽게 더빙된 듯했다. 모든 역할의 대사를 이 여성 성우분이 더빙하는데 독일어를 잘 몰라도 마치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느낌일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안 그래도 다 듣고 이해하기 힘든데 독일어 더빙에 묻힌 영어 대사를 듣느라 많은 부분을 놓쳤다.

또 한 번 놀라웠던 것은 영화 시작 전 극장 안을 뛰어다니던 아이들, 친구를 부르느라 정신없이 소리쳤던 아이들이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영화 시작 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번 영화는 제대로 보기엔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마치 스위치를 끈 것처럼 조용히 영화를 관람했다. (물론 아이들만의 포인트에서 까르르  터져 나오는 웃음은 당연히 받아 들어야 했다.)


영화가 끝나자 감독과 배우의 Q&A가 이루어졌다. 질문을 위해 줄을 선 아이들은 이해가 되지 않은 장면이나, 영화에 대한 찬사 등 나름의 느낀 점들을 감독과 배우와 나누었다. 너무 귀엽기만 한 질문도 있었고 너무 멋들어진 영화 감상을 이야기하는 아이도 있었다. 갑자기 이 아이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10살 남짓한 나이에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과의 대화 경험은 이 아이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영화가 모두 끝나고 엄청난 인파의 아이들과 함께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왁자지껄한 아이들 속에 한 아이와 선생님이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귀를 쫑긋했지만 독일어였다 ㅜ) 대화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오늘 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했고 아이의 질문과 어떤 생각을 선생님은 너무나 공감하며 이야기하고 도착하기 전까지 긴 대화를 이어갔다.

아이들과 함께 동승한 베를린의 노란 이층버스

아이를 키워본 적도, 이 또래의 아이였던 적이 또 너무 옛날이라 기억이 옅어져서 인지 아쉽게도 베를린의 아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이런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기억이 없다. 오늘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감독과의 대화를 하고, 그리고 선생님과 이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 한 베를린의 아이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자라날까?.. 잘은 몰라도 괜찮은 어른으로 자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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