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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Mar 07. 2021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눈의 고장 아키타(秋田)에서 보낸 3년간의 기록

2016년 4월. 도쿄역에서 아키타행 신칸센 고마치에 오르던 때를 기억한다. 설레는 마음과 불안한 마음을 꼭 절반씩 안고 있었다. 열차가 출발한 뒤 한동안은 어떤 상념에 젖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머릿속으로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그려보는 동안, 창밖 풍경은 촘촘한 빌딩 숲을 지나, 차츰 울창한 삼나무 숲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열차의 속도가 부쩍 느려지더니, 어둡고 긴 터널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열차가 한 터널에서 다른 터널로 옮겨가는 동안, 창밖으로 희끗하게 남은 겨울의 잔설들이 보였다. 눈의 고장 아키타(秋田)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아키타현 다이센시에 오게 된 지도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제부터 연재할 글들은 이곳에서 국제교류원이라는 이름으로 지내는 동안 틈틈이 남긴 기록들을 새롭게 고쳐 쓴 것이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일본 생활이나 업무에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지극히 사적인 생각과 시간을 되는대로 써 내려간 글이 대부분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썼다. 떠나기 전에 한 번쯤 되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한겨울밤의 꿈 같은 순간들을.


3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처음 미지의 세계에 불과했던 이 작은 도시는, 쉽게 잊거나 지울 수 없는 각별한 공간이 되었다. 어떤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 공간을 읽고 느낀다는 것, 그 공간에 익숙해진다는 것, 정든 공간에서 멀어지고, 다시 공간을 그리워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요즘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 공간에서 멀어지는 날이 올 것이고, 그러고 나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이 공간도 현재가 아닌 과거에 머무르는 때가 올 것이다. 그렇게 이곳에서의 모든 순간이 추억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고 나면, 나는 필연적으로 이곳을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Dec 2018,

눈 내리는 아키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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