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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Mar 07. 2021

벚꽃이 필 무렵 흐린 날씨

Apr 23, 2016

“사쿠라 전선과 함께 온 셈이네요.”


창문 너머로 만발한 벚꽃을 바라보며 S가 말했다. 나는 뻔뻔스럽게 ‘그렇다’고 답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이곳에 도착한 다음날, 거짓말처럼 직장 앞 벚나무에 꽃망울이 터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벚꽃 개화 시기를 장마 전선에 빗대어 나타내는 이른바 ‘사쿠라 전선’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통상 남녘에서부터 시작돼 북쪽으로 올라온다. 내가 당분간 지내게 될 다이센시는 일본 동북 지방에 위치한 곳으로 벚꽃의 개화 시기가 느린 편에 속한다.


올해 한국은 예년보다 벚꽃이 빨리 개화했다. 보통 4 중순은 되어야 꽃이 만개하는 수도권에서도 3 말부터 꽃들이 말간 얼굴을 내밀었다. 덕분에 올해는 벚꽃을  번이나 보게 됐다. 떠나기   , 떠나온    . 여러모로 운이 좋은 봄이었다고 생각한다. 창가에 서서 흐드러지게  벚꽃을 바라보며 ‘날씨가 조금만  좋았더라면하고 생각하는데, S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듯이 이런 말을 덧붙인다.


“‘하나구모리(花曇り)’라는 말이 있듯이 벚꽃은 맑은 날보다는 흐린 날 봐야 더 예뻐요.”


‘하나구모리’는 일본어로 ‘꽃(花)’과 ‘흐림(曇り)’이라는 단어를 합친 말로, ‘벚꽃이 필 무렵 흐린 날씨’를 뜻한다. 흐린 날 벚꽃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면 그런 단어는 생겨나지 않았을 거라는 S의 주장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내가 진지하게 ‘그렇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니 그냥 잊으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벚꽃이 필 무렵 흐린 날씨.


희한하게도 그 말을 들은 뒤로는, 흐린 날 벚꽃이 한층 더 기려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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