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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Mar 14. 2021

스튜핏 사샤

Apr 29, 2016

다이센시에서는 매달 크고 작은 불꽃놀이 행사가 열린다.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행사는 여름에 개최되는 전국불꽃경기대회 ‘오마가리 불꽃축제(大曲の花火)’.  축제는 일본 3 불꽃축제로 손꼽힐 만큼 유명하다. 다음으로 규모가  것이  계절의 이름을 붙인 불꽃놀이다. 오늘은 그중 하나인 ‘봄의 (春の章)’ 하는 날이다. 불꽃놀이에는 얼마  호주 교류원 I 통해 알게  미국인 N 함께 가기로 했다. N 평소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데려오겠다고 했다.


N이 데리고 온 영국인 사샤는 흑갈색 곱슬머리와 커다란 두 눈, 무엇보다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친구였다. 그녀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공무원을 하다가, 일이 너무 지루하기 짝이 없어 불현듯 일본행을 결정했다고 했다. 평소 일본의 전통 무술인 가라테를 좋아했기 때문이란다. 다가오는 골든위크 때는 히로시마에서 에히메까지 자전거 여행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말 대단하다고, 힘들지 않겠느냐는 내 물음에 사샤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어차피 인생엔 후회만 남게 마련이니까. 내가 또 어리석은(stupid) 결정을 한 거지.”  


일본으로 떠나오면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친구들은 저만치 앞서 나가는데 나 홀로 뒤처지는 것 같아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견디면서 산다는데, 끝내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는 스스로가 나약하게 느껴져서.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결국 생겨나고야 말 사람들과의 공백이 두려워서. 무엇보다도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자신이 내린 결정이 ‘어리석은 결정’이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는 사샤는 그래서 더욱 근사해 보였다.


불꽃놀이는 봄의 폭풍(春の嵐) 속에서 진행됐다. 세찬 빗줄기와 거센 바람 속에서도 불꽃은 찬란하게 하늘을 수놓았다. 도중에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났지만, 사샤는 이런 불꽃놀이는 생전 처음이라며 스러지는 불꽃을 배경으로 신이 난 듯 연신 사진을 찍었다. 폭풍 속의 불꽃과 사샤는 퍽 잘 어울렸다. 혹 오늘 이후에 감기에 걸린다 해도 그녀는 그저 어리석게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며 후회하고는 말 것이다. 어리석은 결정을 반복하고, 그래서 후회만 남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녀처럼만 살아간다면 짧은 생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온 후, 처음으로 이곳에 오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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