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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 솔 May 18. 2021

출근길 단상

April, 2016

집에서 회사까지는 걸어서 출근한다. 평소 내가 가장 즐겨 걷는 출근길은 가쓰라 공원(桂公園)을 지나는 길이다. 가쓰라 공원의 둘레에는 벚나무가 촘촘히 심겨 있다. 나무의 나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둘레로 봐서는 모두 30년 이상은 된 것들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호주 교류원 I의 가르침대로 현도 13호선을 따라 자주 걸었다. I는 그 길이 직장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멀리서 반짝이는 가쓰라 공원의 분홍빛을 본 후로는 이 길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내가 좋은 길,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걷자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가쓰라 공원을 지나면 ‘후지타 클리닝’이라는 이름의 작은 세탁소가 하나 나온다. 낡은 간판을 떼어놓고 보면, 평범한 가정집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얼마 전, 아침 출근길에 이 세탁소 앞에서 처음 보는 노파에게 인사를 받았다. 세탁소 앞 화단에 물을 주고 있던 것으로 보아서 아무래도 주인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에는 내게 하는 인사인 줄 모르고 무심히 지나칠 뻔했는데, 슬쩍 둘러보니 주변에 걷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얼결에 꾸벅 인사를 받으면서도 낯선 이의 친근한 인사가 오랜만이어서 내심 당황했다. 혹 불편한 기색이 표정에 드러날까 급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가 나의 등에 대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잘 다녀오세요(いってらっしゃい)!”


봄볕에 녹아내리는 겨울 눈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그 순간 잠깐 동안 불편했던 마음은 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에게는 으레 건네는 인사에 지나지 않았을 그 말이, 어쩐지 내가 걷는 길에 대한 응원처럼 들렸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우연히 만난 노파의 인사를 들은 뒤로, 늘 걷던 그 길이 더 좋아졌다. 어떤 길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건, 역시 길 위에서 만난 인연이란 생각이 든 어느 날의 출근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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