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작전하듯 일사불란했던 해고 통지
지난 설날, 고향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황당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한국 GM 자동차에 도어트림 등, 각종 내장재를 납품하는 ‘동양기연(대표이사 김경호, 회장 유래형)’이라는 회사의 노동자 62명이 설날을 닷새 앞둔 1월 23일, 문자로 해고 통지를 받았답니다. 회사가 팔렸으니 더 이상 출근하지 말라면서 공장 정문을 자동차로 가로막고 아무것도 모른 채 평소처럼 출근하던 노동자들을 막아섰답니다.
해고 통지를 받은 62명 노동자 가운데 어떤 이는 서른 살 청년이며 또 어떤 이는 애들 키우느라 한창 돈이 필요한 사십 대의 중년이었고 또 어떤 이는 30년 동안 회사를 위해 자신의 젊음과 인생을 바쳤던 오십 줄의 장년이었습니다.
동광기연은 1966년 창업한 회사로 2017년 현재 동광기연㈜, ㈜인피니티, ㈜에스에이치글로벌, ㈜에스에이치아이엔티, ㈜에스에이치비피 등 국내외 11개 계열사를 거느린 동광그룹으로 성장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사는 무슨 이유에서 그룹의 모태와 같은 동광기연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헌신짝 버리듯 내 쫒았을까요?
동광기연 사용자와 노동조합이 체결한 단체협약 제35조 1항과 2항에는 회사의 분할, 합병, 양도에 관한 계약을 체결할 때, “사전에 계약내용을 조합에 공개하고 협의를 해야 하며 계약 체결 과정에 조합의 참여를 보장한다. 회사의 정리 해산 시 70일 전에 통보하고 반드시 조합과 사전 합의를 해야 한다”라고 돼 있답니다. 또한 2015년 노사가 합의해 공증까지 받은 확약서에 따르면 “노동조합과 사전 합의 없이 공장 폐업. 법인 해산/청산. 정리해고를 시행하지 않는다”고도 명시되어 있었답니다.
그렇다면,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하듯, 노동자들도 모르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공장 매각, 문자 해고, 공장 출입통제는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이며 부당해고 아닙니까? 북한의 미치광이 김정은이가 쳐들어 오기라도 했답니까?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온 나라와 국민이 혼란에 빠져있는 틈을 이용하여 돈 없고 빽 없는 노동자들을 이렇게 내팽개쳐도 되는 겁니까?
적자회사의 수상한 지출, 수 백억 원
회사는 ‘더 이상의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경영분석 전문가에 의하면, 동광기연은 “2012년까지 매년 이익을 내 이익잉여금이 632억 원에 이르는 등 재무건전성과 유동성이 매우 안정적인 수준”의 건실한 부품회사였다고 합니다. 특히 동광기연은 은행에 이자를 주면서까지 차입한 수 백억 원의 자금을 관계사들에게 2014년 151억 원, 2015년 256억 원을 무이자로 대여했으며 그로 인한 이자 손해가 수 십억 원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지난 2015년에는 모 그룹의 계열사인 인피니트 지분 19%를 한 주당 약 230만 원에 인수하면서 무려 174억 원을 지출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동광기연이 인수한 인피니트 주식의 주당 가격 230만 원은 그 전년도(2014년)에 같은 계열사 에스에이치글로벌이 인피니티 지분 39%를 인수하면서 책정되었던 한 주당 187만 원보다 무려 43만 원이나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아니, ‘더 이상의 적자를 감당할 수 없어서’ 직원들도 모르게 서둘러 팔아먹었다는 회사가 어떻게 수 십억 원의 대출이자를 부담하면서까지 관계사에 400억 원을 공짜로 빌려줄 수 있었겠으며 의결권도 행사할 수 없는 관계사의 주식을 무슨 이유에서 그토록 비싼 가격에 174억 원이나 지출할 수 있었을까요?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광기연은 세습경영을 위한 노조탄압의 희생양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공장이 뭐, 시외버스랍니까?”
동광그룹 11개 계열사 가운데 유일하게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는 곳은 동양기연, 단 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회사는 지난 2014년 인천 남동공단에 있던 공장을 갑자기 전북 익산으로 이전했다네요? 더구나 다시 1년 뒤, 2015년에는 원래 위치였던 인천공장으로 다시 옮겨 옵니다. 이상한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난해 1월에는 공장에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했고, 같은 해 4월에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공장을 임대해 또다시 이전했답니다.
아니, 공장이 뭐, 시외버스랍니까? 2년 동안 인천에서 전북 익산, 다시 인천, 또다시 안산으로 탁구공처럼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장거리 출퇴근의 고통은 오롯이 노동자들의 몫이었지요.
동광기연을 비롯, 동광그룹 계열사인 에스에이치글로벌, SHBP, SHINT, 인피니트 등은 동광기연과 마찬가지로 한국GM에 자동차 도어트림 내장재를 납품하고 있지만 동광기연과 달리 오너 3세들이 대부분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새로운 차종에 대한 납품기회가 생기면 오너 3세 명의의 신설법인을 설립한 후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그 결과 직계가족 3대는 경영권 승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했고, 국내 계열사와 해외 계열사까지 포함해 총 10여 개가 넘는 법인을 거느린 동광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유일한 노조 기업 동광기연에 대한 투자는 외면하면서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한 자금지원을 통해 안정된 세습경영의 희생양으로 삼았으며 급기야 설 연휴를 앞두고 노동자들에게 목숨과도 같은 생산현장을 빼앗고 공장과 노조사무실 전기마저 끊어 버린 채, 오히려 손배가압류 협박을 외쳐대며 노동자들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동광그룹은 가난한 NGO???”
CBS 라디오의 ‘안녕하십니까? 정관용입니다.’의 프로그램에서 전화 인터뷰로 출연한 동광기연 노동조합의 김완섭 지회장은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동광기연의 다른 계열사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임금으로 삭감하지 않으면 폐업하겠다는 협박을 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광기연 조합원들의 현재 연봉은 3,000만 원 수준이며 회사에서 말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연봉은 2,000만 원 수준이랍니다. 2년 사이에 공장을 인천에서 익산으로, 다시 인천으로, 또다시 안산으로 마치 난폭 운전하는 시외버스처럼 끌고 다니면서 노동자들을 멀미 나게 만들었던 회사가 정규직 노동자의 연봉조차 비정규직 수준으로 낮추라는 요구는 누가 생각해도 지나쳐 보입니다. 국내외 11개 계열사를 거느린 동광그룹이 가난한 NGO, 혹은 후드 티와 라면으로 연명하는 스타트업입니까?
“고소하든 말든 맘대로 해라???”
지난번 칼럼에서 필자는 4가지 종류의 돈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는 더 많은 종류의 돈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검은돈, 맑은 돈도 있지만, 금덩이 같은 돈, 핏덩이 같은 돈도 있습니다. 재벌에겐 그들의 금고에 쌓아 둔 수 백 조원의 잉여금이 분명 ‘금덩이’겠지만, 쌓아두기는커녕, 한 달을 살아내기에도 팍팍한 노동자들의 월급은 ‘핏덩이’랍니다. 그 핏덩이를 문자 통보 하나로 땅에 내팽개친다면, 그렇게 내 던져진 핏덩이가 향해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함께 놀아난 대통령의 무능으로 나라와 국민이 혼란에 빠져있는 이때를 이용하여 노동자의 핏덩이로 자신의 금덩이를 채우려는 사람들에게 과연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고소하든 말든 맘대로 해라.”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지, 회사는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말하는 걸까요? 아마도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한국의 사법부는 ‘돈과 백’이면 쉽게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이제 한국의 검사와 판사들은 자존심도 없습니까? 이렇게 무시당하고도 가만히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먼저 사법부가 응답해야 합니다.
일개 기업조차 대한민국 사법부를 말랑말랑하게 생각한다는 증거니까요. 사법부의 권위와 정의가 정말 살아 있다면, 지금의 사태에 이르게 된 모든 과정을 낱낱이 조사하여 동광그룹 관계자들을 법으로 응징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정치인들입니다.
국민 앞에 진정한 대통령을 원한다면, 평소엔 가지도 않던 양로원에서 떡국을 퍼다 나르고, 지나는 아이를 들어 올려 입맞춤하는 따위의 ‘쌩 쇼’를 할 것이 아니라, 하루아침에 핏덩이 같은 월급을 빼앗기고 피눈물 흘리는 노동자들에게 달려가야 합니다.
마지막은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치켜든 촛불로 당장의 어두운 곳을 함께 밝히면 어떨까요? 이 글을 무한 공유하고, 댓글로 동광기연 노동자들을 응원하여 동광그룹과 동광기연이 노동자들에게 가한 불법해고를 원상회복시키도록 우리의 작은 힘을 보태면 어떨까요?
힘내세요, 우리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