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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주 Jan 25. 2017

퇴직하는 선배에게

선배, 오랜만입니다.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특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더는 출근할 곳이 없는 선배의 마음은 어느 누구보다 춥고 시릴 것입니다. 퇴직 환경이 옛날 같지 않다는 건 굳이 통계지표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체감하는 바이기 때문이지요.

선배처럼, 한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등 떠밀리듯 회사를 나오는 경우도 상당합니다. 더욱이 이들은 ‘이중 추위’에 시달리지요. 회사라는 외피가 벗겨졌을 때 처음 맞닥뜨리는 생경한 추위와 새로운 외피를 구하려고 집 밖을 나서면서 맞게 되는 칼바람이 그것입니다.

뭐든 자연스러워야 마음도 편안한데, ‘퇴직=휴식’이 아닌 ‘퇴직=실업’으로 뒤바뀐 현실에서 ‘제2의 인생(Second Life)’은 다른 사람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흔히들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을 거쳐 온 선배에게 ‘제대로 된 준비’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마음만 급해지지요.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 준비 없는 창업이나 투자는 퇴직금을 ‘한 방’에 날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설령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 해도 당장의 형편에서 최대한의 지혜를 끌어모아 처방전을 찾은 뒤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아직 선배 앞엔 수십 년의 세월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원하는 창업   

  

먼저 시대를 잘 읽어 보십시오. 이는 퇴직 후 소득 창출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좋든 싫든 직장은 그야말로 온실이었지요. 집 밖의 기온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 필요도 없었고요. 특히 선배처럼 담장이 높은 직장(공무 기관, 공기업 등)이나 한두 군데 회사에서 오랫동안 장기근속한 경우라면 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고금리를 내세우는 부동산 사기에 알토란 같은 퇴직금을 날립니다. ‘20~30% 고수익, 원금 보장’ 등으로 유혹하는 금융사기 피해자 가운데 선배와 비슷한 교사나 군인, 공무원, 경찰 은퇴자가 유독 많은 건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랍니다.     

또한 은행 대출까지 받아가며 원룸빌딩을 지어 올렸지만 세입자를 절반도 못 채워 속을 새까맣게 태우는 사람, ‘먹는장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식당이나 치킨, 피자 전문점, 카페를 창업했다 빚쟁이로 전락한 사례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니 섣부른 창업만큼 위험한 투자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고요. 갈 곳이 마땅치 않다고 매일같이 등산만 하실 게 아니라, 마음을 추슬러 어떤 일이라도 해 보는 편이 좋습니다. 몸으로 느끼는 것이 제일이니까요. 그렇게 적어도 1년 정도는 시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눈으로, 귀로, 머리로 배우면서 틈새 아이템을 찾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그 후 창업 아이템은 어떻게 골라야 할까. 저출산 기조가 굳어지면서 청년은 줄고 노인은 많아집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선배도 느끼겠지만, 청년은 물론 노인조차 소비 여력이 없습니다. 65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비율이 50% 가까이 된다는 사실은 이제 너무 흔한 얘기지요.       

그렇기에 구매층 범위는 최대한 좁히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팔 수 있는 물건’은 ‘모두가 사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구매력 있는 실버계층을 대상으로 한다거나 젊은 맞벌이 부부 혹은 전업주부 등으로 소비 타깃을 정확히 잡아야 합니다. 결국 주변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는 게 중요하지요. 그러려면 꼰대 딱지는 하루빨리 떼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폭넓은 교제를 통해 현실적인 구매력을 지닌 소비층을 파악하고 사업 아이템도 찾을 수 있거든요.

미리 작성하는 소비 ‘견적서’   

  

퇴직 후 재테크는 어떻게 할까. 먼저 선배의 ‘라이프플랜(Life Plan)’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상되는 기대수명과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가능한 한 객관적·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것이 곧 퇴직 후의 삶이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견적서’이기 때문입니다. 라이프플랜이 잘 정리되면 될수록 특정 기간에 얼마의 돈(예를 들어 매월 100만 원, 간병이 필요한 시기엔 매월 200만 원 등)이 필요하며 어떤 형태(목돈, 연금, 임대수입 등)로 준비할지 등 현금흐름 지도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선배의 현재 재정 상태를 깨알같이 정리하고 냉정하게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물론, 소유한 주택을 역모기지로 활용할 때 받을 수 있는 주택연금 예상액, 보장성 보험(나이가 들수록 신규 가입이 어려워지고 보험료도 비싸다), 각종 저축(투자) 성 보험, 금융계좌 잔고(적금·펀드·주식·기타 금융자산 등) 및 부동산 현황을 현시점의 가치로 평가해 보십시오. 물론 금융기관 대출금이나 임차인으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 같은 부채 명세도 꼼꼼히 챙겨야 합니다. 참고로 퇴직연금은 일시금으로 받을 예정이거나 이미 받았다면 60일 이내에 개인형 퇴직연금인 IRP 계좌에 예탁하면 6∼38%에 해당하는 퇴직소득세가 3.3∼5.5% 연금소득세로 낮아져 크게 절약할 수 있다는 것도 참고하시고요. 또 55세 이후부터 연금으로 나눠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중도 해지가 제한된다는 점은 미리 확인하시고요.      

이 과정이 끝나면 퇴직 시점의 ‘재산상태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저축성 보험 같은 장기 상품은 해당 상품의 보험증권이나 약관은 꼭 챙겨두십시오. 약관은 일종의 계약서와 같아서 미래 지급을 담보하는 결정적 근거가 되거든요. 이런 약관은 각 보험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공시실 혹은 상품공시실을 클릭하면 해당 보험상품마다 가입 연월일을 기준으로 검색할 수 있으니 확인 후 개인용 컴퓨터에 다운로드해놓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애들에게 시켜도 됩니다.

정말 중요한 건 다음부터 입니다.


앞에서 꼼꼼하게 정리한 현시점의 재산상태표를 앞으로의  라이프플랜이 요구하는 ‘견적서’와 비교하면서 과부족을 따지는 것이지요. 이때는 미래 시점에 필요한 금액을 현시점으로 끌어당겨 계산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필요하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고요. 제 경험으로 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퇴직 후 필요한 금액이 현재 준비한 자산보다 대체로 많습니다. 그만큼 준비가 덜 된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부족한 금액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먼저 ‘정말 부족할까’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몸에 옷을 맞출 수도 있지만, 옷에 몸을 맞출 수도 있기 때문에 생활비나 여가활동비 등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면서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줄여 보십시오. 늘 검소했던 선배가 말했듯이, 투자를 통한 기대 수익보다 긴축으로 남기는 수익이 훨씬 쉽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부족분이 생긴다면 어떤 형태로든 소득을 늘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만약 고정수입(각종 연금이나 근로소득, 임대소득 등)이 생활비를 충당하고도 남는다면 은행 예·적금보다 주식형 펀드를 고려해 보십시오.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기간을 분산해 위험을 낮추고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고정수입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한 대신, 일시금이나 부동산 자산이 있다면 이를 잘 활용해 새로운 현금흐름을 만들어야겠지요. 특히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일시금을 활용한 연금 수익이나 월 적립식으로 분산 투자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이미 여러 개 나와 있으니 조금만 발품을 팔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선배, 물론 밖은 춥습니다.

그러나 선배에겐 ‘돈’보다 귀한 ‘시간’이 있다는 건 누가 뭐래도 행복한 일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선배는 아직 청춘입니다. ‘Second Life’,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선배, 파이팅!     


- 이 칼럼은 주간동아 [월급쟁이 재테크]에서 '내 퇴직금 지키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동시 게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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