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자본주의 작동원리 가운데 하나는 ‘다 같이 잘 살기 원하면 다 같이 망한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때의 모순이란 부의 양극화를 뜻한다. 돈을 가진 자본가는 일하지 않고도 그가 가진 자산이 불어나는 반면 가난한 노동자는 더 많은 시간을 일해도 갈수록 가난해지는 현상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더라도 시장 경제를 도입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예컨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의 도시 지역 가처분 소득의 상위 20% 와 하위 20%와의 격차는 2000년 이전에는 약 2.5배 수준이었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2년에는 무려 6.3배로 두 배 이상 벌어졌다. 그 때문에 중국의 시진핑은 2021년 8월, 소위 공동부유, 즉 부의 분배를 개선하여 다 같이 잘 살자는 정책을 표방하면서 ‘알리바바’ 등 그때 당시 크게 성장하고 있었던 인터넷 기업을 강하게 규제했지만 오히려 중국의 인터넷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아 경제성장은 물론 청년들의 취업 시장을 크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렇다면 인류의 탄생과 함께 만들어진 자본주의의 모순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것의 실체는 사람들의 탐욕이다. 탐욕은 내가 가진 소유를 더욱 확장시키고 싶은 마음이며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더 많이 가지기를 원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과 갈등은 당연한 것이고 갈수록 치열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의 탐욕은 양면성이 있다. 한편으로는 보다 적극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경제 활동을 촉진시키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부의 양극화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대화시킨다. 이때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탐욕이 시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환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반면 사회주의 특히 공산주의는 그 같은 자유를 일부 혹은 전부 제한함으로서 자본주의 모순을 개선하거나 없앨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과가 어땠는지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확인되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탐욕은 어떤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경쟁을 촉진시키면서 수 많은 갈등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고 필자는 부의 양극화를 개선하고 경제정의를 회복시켜야 한다(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앞선 글에서 인류의 탄생과 함께 생겨난 자본주의는 인류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성장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번에는 인간의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자본주의는 계속 성장한다는 사실을 추가한다. 동시에 자본주의 모순도 더욱 커질 것이다 . 그것은 자본주의가 누군가의 희생을 먹고 성장하는 본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억해야할 것은 투자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의 경제 활동에서조차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이 걸려들기를 기대하면서 올가미를 쳐 놓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주식시장은 시세보다 더 싸게 사려는 사람들과 더 비싸게 팔려는 사람들의 치열한 눈치 작전이 실시간으로 전개된다. 심지어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공매도를 이용하여 가격을 합법적으로 조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소위 ‘작전주’들은 또 어떤가?
글로벌 경제와 투자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축통화인 달러 발행권을 가진 미국은 그렇지 못한 국가, 예컨대 한국과의 관계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글로벌경제위기 등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수 천억 달러, 원화로 환산하면 수 백조 원의 외화를 금고에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 2023년 말 기준으로 한국의 외환 보유액은 4,000억 달러, 원화로 환산하면 500조 원이 넘는다. 물론 미국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그 뿐인가? 미국은 달러 발행권을 적절히 이용하여 전 세계의 금리 정책이나 환율정책을 주도하면서 기회가 생길 때 마다 금융 시스템이 불안정한 아시아 신흥국들을 이용하여 미국의 부를 확대하는 ‘양털깎기’와 같은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절대 공평하지 않다.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고 기업과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부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부자들만 경제를 독식할 수 없는 것은 가난한 자들을 시장 거래에 참여시켜야만 그들의 자산도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은 실직자뿐만 아니라 경제가 파탄 난 신용불량자에 이르기까지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을 도박판에 비유하면 돈을 딴 사람이 돈을 완전히 잃은 사람에게 개평을 주는 것과 같다. 개평을 받은 사람은 그 돈으로 경제와 투자시장에 다시 뛰어든다.
그래서 알아야 한다. 빚만 가득한 집 한 채를 가졌다고 해서 결코 잘 사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누군가가 쳐놓은 올가미에 걸려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2003년 말 기준으로 한국의 가계 부채는 무려 1,900조 원에 육박하면서 GDP 대비 100%를 초과한 유일한 국가이다. 특히 세 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다중채무자가 400만 명 이상이라는 사실은 압축성장을 통한 한국의 자본주의가 모든 사람들을 다 같이 잘 살게한 것이 아니라 갈수록 소수의 부자들에게 돈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자본주의 성장의 역설, 즉 ‘다 같이 잘 살고자 하면 다 같이 망한다.’는 것은 한국의 자본주의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특히 투자시장에서는 좋을 때든 나쁠 때든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호구를 물색하면서 투자 시장을 흔드는 세력들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럴 때마다 자본주의의 성장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평균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지 않는 것이 내 돈을 지키고 불리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