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누구에게도 말 못 한 공백이 남아 있던 날들

by 베레쉬트

외로움은
누가 없어서 오는 게 아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사람이 많은 날에 더 온다.

연락도 오고,
웃을 일도 있고,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는데

집에 들어오는 순간
마음이 혼자 남겨진다.




현관 센서등이 켜진다.
잠깐 환해졌다가
다시 조용해진다.

나는 그 빛이 싫다.

그 빛은
내가 혼자인 걸

들키게 만들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슬픔이 아니다.

슬픔은
울기라도 한다.

근데 외로움은
울지도 못하게 한다.

그냥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만 남긴다.




외로움이 깊은 날은
휴대폰을 더 자주 만지게 된다.

사실

내가 진짜 보고 싶은 건
사람이 아니라

‘누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메시지가 오면
잠깐 살아난다.

근데 더 이상한 건
그다음이다.

대화를 하고 나면
더 외로워진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사람들이 내 얘기를 듣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가

내 얘기를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늘
괜찮은 말만 고른다.

상대가 부담스러울까 봐.

내가 무겁게 느껴질까 봐.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대화에 넣지 않고
대신

예의만 넣는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 종일

‘좋은 사람’으로 살아내고 나면

밤에 남는 건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벌 같다.



내가 나를 빼고 살았던 만큼
정확하게 찾아온다.




외로움이 올라오는 순간은
대부분 아주 사소하다.

라면 물을 올려두고
인덕션 앞에 서 있다가

김이 올라오는데
그 김을 볼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때 마음이
조금 꺼진다.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그냥
작은 정적 하나 때문에.




사람들은 외로움을
“연애를 하면 해결된다”라고 말한다.

근데 외로움은
사랑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사랑이 있어도
외로움은 잠깐

숨어 있을 뿐이다.




외로움은
‘사람 없음’이 아니다.

‘내가 내 삶에 없을 때’

생기는 감각이다.



내가 내 감정을 못 보고
내가 내 상처를 못 만지고
내가 내 욕구를 무시하고

그렇게 나를 계속 지나치면

어느 순간
내 마음이 나에게서 떠나버린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외로움이 들어온다.




나는 외로움을 없애려고
많은 걸 했다.



더 웃고,
더 바쁘게 살고,
더 만나고,
더 연락하고.

근데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외로움은
채워달라는 게 아니라

봐달라는 것이었으니까.




오늘은
외로움에게 묻는다.

“내가 뭐가 그렇게 서운해?”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외로움이 내 안에서 대답한다.



“너는…



너를 너무 오래

혼자 두었잖아.”




그 말이
이상하게 아프다.

누구한테 상처받은 것도 아닌데
내가 나를 오래 방치했다는 사실이
너무 정확해서.




그래서 오늘은
외로움을 해결하지 않기로 한다.

외로움을 고치려고 하면
나는 또 나를 부정할 테니까.




오늘은
외로움 옆에 앉아주기로 한다.

외로움은
나에게 해준다.




“너 오늘도 잘 버텼다.”




그 한 마디가
외로움을 없애진 못한다.

근데

외로움 속에서
나를 조금 꺼내준다.



외로움은
나를 망치러 온 게 아니다.


외로움은
내가 나에게 돌아오게 하려고
나를 부르는 감각이다.


그래서 오늘 밤은
외로움에게도 자리를 준다.

외로움도 결국
나를 찾으러 온 것이니까.




(오늘은 외로움에게 한 마디 남겨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