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너진 게 아니다. 다 써버린 상태로 남았다
아침에 눈을 뜨는데
몸이 먼저 안다.
오늘도 살아야 한다는 걸.
씻고, 옷을 입고,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는
웃는다.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어느 순간부터
하루가 “넘어간다.”
살아낸 게 아니라
그냥
버틴 채로 종료된다.
웃고 있는데
내 얼굴이 비어 있다.
기대하던 것도
별로 기대되지 않고,
좋아하던 것도
별로 좋지 않다.
내 마음이
전원을 먼저 내려버린 느낌.
번아웃은
슬픔이 아니다.
슬픔은
아직 울 수 있다.
그런데 번아웃은
울 힘도 없다.
번아웃이 오면
사람은 이상해진다.
그냥
아무것도 원하지 않게 된다.
좋아하던 것도
귀찮아지고,
기다리던 약속도
무의미해지고,
사람이 싫은 것도 아닌데
사람이 부담스럽다.
번아웃은
게으름이 아니다.
번아웃은
너무 성실했던 사람에게 온다.
너무 책임졌고,
너무 잘 해냈고,
너무 버텨낸 사람에게.
그래서 번아웃이 온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제일 먼저 의심한다.
“내가 왜 이러지?”
“나 망가졌나?”
그런데 아니었다.
망가진 게 아니라
다 쓴 거다.
번아웃은 고장 난 게 아니다.
다 써버린 사람의 신호다.
번아웃의 가장 무서운 부분은
일을 못 하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은
내가 나를 보는 법을
잃는 것.
아무리 해도
‘부족한 나’만 보이는 것.
번아웃은
‘할 일’이 많아서 오는 게 아니다.
번아웃은
쉴 때도 죄책감이 드는 사람에게 온다.
쉬면 불안하고,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누우면 내가 쓸모없어지는 것 같아서
쉬는 시간에도
마음은 계속 출근해 있다.
어느 날 저녁,
겨우 집에 들어왔는데
휴대폰이 한 번 울린다.
회사 단톡방이다.
“내일 오전까지 이것도 가능할까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손가락이 멈춘다.
답장을 치면
좋은 사람이 되는 걸 안다.
답장을 안 치면
나쁜 사람이 되는 걸 안다.
근데 그날은
둘 다 하기 싫다.
좋은 사람도 싫고
나쁜 사람도 싫다.
그냥…
아무 역할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화면을 끄고
휴대폰을 엎어놓는다.
그 짧은 침묵 속에서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말한다.
“나 이제 못 해.”
번아웃은 ‘하기 싫다’가 아니다.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깝다.
어느 날은
정말 별거 아닌 순간에
무너진다.
메일을 하나 보내야 하는데
커서가 깜빡이는데
그 깜빡임이
너무 오래 느껴진다.
마치
“너 아직도 살아?”
하고 묻는 것처럼.
그때 나는 깨닫는다.
아, 나 지금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살아있는 게
힘들구나.
번아웃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번아웃은
사실
살고 싶어서 생기는 마지막 신호다.
“이 방식으로는 못 살아.”
“이 속도로는 무너져.”
번아웃은 끝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정지 버튼이다.
번아웃이 온 사람은
원래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오래 버텼다.
남들보다 오래.
남들보다 조용히.
남들은 힘들면 티를 내는데
나는 티를 못 냈다.
티를 내면
무너질까 봐.
나는
괜찮은 척을 너무 오래 했고
그 척을 유지하는 데
내 전부를 써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괜찮아지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졌다.
오늘은
번아웃을 해결하지 않기로 한다.
번아웃을 해결하려 하면
나는 또
“더 잘 회복해야지”
“더 빨리 돌아가야지”
하면서
나를 다시 몰아붙일 테니까.
오늘은
나에게 이렇게만 말해주기로 한다.
“그동안
너 혼자 너무 많이 했어.”
“이제는
너를 지키는 쪽으로 살아도 돼.”
번아웃은
내가 고장 난 증거가 아니다.
번아웃은
내가 끝까지 버틴 증거다.
그리고 이제
버티는 걸 멈추고
살아야 한다는
증거다.
그래서 오늘 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도
답장을 못 해도
세상이 날 평가해도
오늘 밤만큼은
그 모든 것보다
내가 먼저다.
번아웃은
나를 죽이러 온 게 아니다.
번아웃은
내가 나를 다시 살리게 하려고
나를 멈춰 세운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나는 살아가겠지.
다만
예전처럼은 못할 거다.
나를 버리고 가면서까지
착하게 살지는 못할 거다.
오늘은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