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

늘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의 피곤함에 대하여

by 베레쉬트

예민함은
감정이 아니다.


나는 이 말을
너무 늦게 알았다.


까다롭다.
피곤하다.
작은 일에 크게 반응한다.


이 말을 오래 들으면
나는 결국
나를 의심하게 된다.




근데 나는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이다.


예민함은
내가 살아남으려고 만든

감각이었다.




나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니다.

화가 나기 전에
이미 다 느껴버리는 사람이다.




어느 날,
문자를 하나 보냈다.

“오늘 어땠어?”

별 뜻 없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화면에
‘입력 중…’이 떴다.

잠깐
안심했다.

답이 오겠구나.

근데
몇 초 뒤
그 글자가 사라졌다.

아무 말도 오지 않았다.

그 짧은 틈에서
나는 이미
내 문장을 되감고 있었다.

내 말이 부담이었나.
내 질문이 무거웠나.
내가 또 선을 넘었나.

버려지는 게 무서운 게 아니다.

버려질 기미를 먼저 알아차린다.




예민함은
답장이 오기 전에 시작된다.

그리고
내 안에서 먼저 끝난다.




그다음은 더 익숙하다.

상대가
단답을 보낸다.

“응”

단 한 글자.

근데 나는
그 한 글자에서
온도를 읽어버린다.

피곤함.
거리감.
조금 귀찮아진 마음.

서운한 게 먼저가 아니다.
겁이 먼저 온다.

아,
지금 나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구나.

사랑을 많이 원하는 게 아니다.
사랑이 줄어드는 순간을 너무 빨리 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작아진다.

말을 줄이고,
표정을 고르고,
감정을 접는다.

내가 이 관계를 망칠까 봐.




이 말도
익숙하다.

“너 생각이 너무 많아.”

근데 나는
생각이 많아서 힘든 게 아니다.

받아버리는 게 많아서 힘들다.
생각은 나중에 붙는다.

예민한 게 아니다.
내가 받은 게 너무 많았다.




조금만 흔들려도
나는 내가 먼저 틀렸다고 믿는다.

내가 유난인가.
내가 과한가.
내가 이상한가.

그래서 나는
상황보다 먼저
나 자신에게 사과한다.




나는 참는다.

강해서가 아니다.

참지 않으면
사람이 떠날까 봐.

내가 불편한 사람으로
남을까 봐.

그래서 나는
내 마음 대신
예의를 넣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장면이 온다.

내가 용기 내서
묻는다.

“괜찮아?”

근데 대답이 없다.

무시가 아니다.
화가 난 것도 아니다.

그냥
지나간다.

다른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때 나는
확신한다.

내 질문은
여기서 환영받지 못했구나.

관계를 망친 적 없다.


내가 먼저 지웠다.




거절을 당한 뒤에 멈추는 게 아니다.

거절의 기미를 느끼는 순간
먼저 멈춘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사라진다.




집에 오면
나는 갑자기 꺼진다.

웃는 얼굴로 하루를 통과했는데
문을 닫는 순간
몸이 먼저 안다.

오늘도 내가
나를 너무 오래
안쪽으로 접어놨다는 걸.




냉장고 문을 연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닿는다.

뭘 먹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냥
열었다가
닫는다.

그 순간
마음이 텅 빈다.

외로움도 아니고
피로도 아니다.

내 욕구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침대에 누우면
더 분명해진다.

몸은 누웠는데
심장이 바쁘다.

눈을 감으면
오늘 했던 말이
계속 재생된다.

아까 그 말은 괜찮았나.
그 표정은 이상하지 않았나.
그 침묵은 너무 길지 않았나.

나는 잠들기 전에
자기 검열부터 한다.

예민함이 아니다.

버티는 방식이 나를 닳게 했다.




그때 드는 생각은 늘 같다.

“또 내가 예민한가 봐.”

그 말이
나를 제일 많이 망친다.

예민함은 문제가 아니다.
자기 비난이 문제다.



결국 남는 건 이거다.

사람들 속에 있었는데
내 마음은
나랑 같이 있지 않았다.

내가 나를 버린 채로
관계만 통과한 하루.




오늘은
예민함을 고치려 하지 않기로 한다.

없애려 하면
나는 또
나를 다그치게 된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단지
너무 많은 신호를
혼자 받아온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내일도 또
사람들 속에서 웃을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나를 잃으면서 웃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