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 텅 비어버린 느낌
공허는
기분이 나쁜 상태가 아니다
나는 한동안
공허를 그렇게 착각했다
“내가 우울한가?”
“내가 재미없는 사람인가?”
“더 바쁘게 살면 나아질까?”
“왜 나는 자꾸 텅 비지?”
그런데 공허는
성격이 아니었다
공허는
내가 이상하다는 증거도 아니었다
공허는
드러나는 현상이었다.
나와 목적의 연결이
조용히 끊어진 상태.
공허가 찾아오는 날은
이상하게도
슬픈 일이 있었던 날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게 멀쩡한 날이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다
현관문을 닫는다
도어락이 잠긴다
띠리릭—
그 소리가
오늘 하루의 끝을
확정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불을 켜고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는다
다 괜찮다
별일 없었다
버텨낼 만했다
무너질 일도 없었다
그런데
소파에 앉는 순간
내 안쪽에서
무언가가 멎는다
누가 나를 때린 것도 아닌데
안이 꺼진 것처럼
텅 비어버린다
“그래서…
오늘은 뭐였지?”
그때 나는
핸드폰을 켠다
볼 것도 없는데
할 일도 없는데
그냥
화면을 내린다
또 내린다
또 내린다
공허한 날의 습관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마음을 채우려는 게 아니라
텅 빈 걸 못 보게 하려는 것.
공허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순서가 있다
나는 계속 움직였고
계속 해냈고
계속 버텼다
근데 이상하게
언제부터
차오르지 않았다
해도 해도
기쁨이 오지 않고
얻어도
감정이 생기지 않고
쉬어도
회복이 오지 않았다
그 고리의 한 칸이
조용히 끊어져 있었다.
공허는 비어 있는 게 아니다.
의미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다.
공허가 시작되는 삶은
대부분 비슷하다
잘해야만 해서
잘해도 기쁨이 없는 삶
맞추느라 살았더니
내가 사라지는 삶
목표를 찍었는데
그다음이 없는 삶
번아웃이 지나가고
감정만 꺼져버린 삶
공허는
이 삶들의 ‘결과’가 아니다
이 삶들이 남긴
가장 정직한 신호다.
공허한 날이 무서운 이유는
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슬픔은
울면 끝이 난다
근데 공허는
울 이유조차 없다
그래서 더 무섭다
공허의 진짜 얼굴은
감정 마비다
내 마음이 죽은 느낌
근데 실제로는
마음이 죽은 게 아니다
마음이 다치지 않으려고
스스로 문을 닫은 것이다
기대를 닫고
설렘을 닫고
상처받을 가능성을 닫고
의미를 닫았다
공허는 포기가 아니다
공허는
나를 지키기 위해
내가 나를 잠근 상태다
공허를 끝까지 따라가면
결국 이 질문으로 간다
“나는 왜 살고 있지?”
기준이 흐려졌을 때
사람은 공허해진다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무엇을 지키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이게 흐려지면
잘돼도 공허하고
즐겨도 공허하고
사람을 만나도 공허하다
공허는 결핍이 아니라 확인등이다.
나는 공허가 올 때
이렇게 들린다
“이 삶이 내 것 같지 않아.”
“나는 지금 나를 놓치고 있어.”
“이 방식으로 계속 가면 꺼질 것 같아.”
공허는 벌이 아니다
공허는
회복을 위한 신호다
그리고 공허는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삶의 기준이 제거되기 시작할 때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공허는
세상의 삶에 가려진
내가 드러나는 것이다.
공허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세기 1장 2절)
나는 공허를
없애려고 하지 않기로 한다
없애려는 순간
나는 또 나를 몰아붙일 테니까
공허는
문제가 아니다
신호다
공허는 실패가 아니다.
중심에서 벗어났다는 신호다.
그리고 이 말들이
남겨진다.
공허는 내가 비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내게 가려진 모든 것들이 제거되고
드러난 것이다.
오늘 밤은
텅 빈 채로 있어도 된다
공허가 와도
나는 허전한 게 아니다
나는
내 중심에서 벗어난 걸
정직하게 감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내일도
바쁘게 살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이유 없이 바쁘진 않을 거다
공허가 내게 준건
목적이 아닌
기준을 찾게 해 준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