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먼저 상대를 확인하느라, 나를 놓친 날들
단톡방에 알림이 하나 뜬다.
“ㅇㅋ”
“응”
“그래”
평소보다
조금 짧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말을 줄이고 있다.
아직 아무 일도 없었는데
나는 벌써
사과할 준비를 한다.
눈치가 왔다.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그냥,
이미 안에 있었다.
“나 여기 있어.”
눈치가 말했다.
나는 대답하기 전에
이미 숨을 한 번 줄이고 있었다.
눈치는 그걸 제일 먼저 알아챘다.
“방금… 분위기 바뀌었지?”
사람들은 멀쩡했다.
웃고 있었고,
대답도 했다.
그런데 눈치는
멀쩡함 속에 숨어 있는
아주 작은 틈을 좋아한다.
말끝이 순간 짧아진 것.
웃음이 한 번 덜 나온 것.
대답이
“응”에서
“어”로 바뀐 것.
눈치는
그걸 사건이라고 부른다.
“큰일이다.”
눈치가 말했다.
나는 거의 반사처럼 물었다.
“내가 뭐 잘못했어?”
눈치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응.
일단 네 탓으로 해두자.
그게 제일 안전해.”
그때 알았다.
눈치는
상대 마음을 읽는 능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버려질 가능성을
먼저 계산하는 감각이라는 걸.
눈치는 배려가 아니다.
센스도 아니다.
눈치는
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달한 감각이다.
나는 눈치에게 물었다.
“너는 왜 항상
내 편이 아닌데.”
눈치는 웃었다.
“내 편이야.
너를 살게 해주는 편.”
눈치가 내 옆에 앉았다.
“너 기억나지?”
“뭐를?”
“솔직했다가 혼난 날.
표현했다가
분위기 얼어붙은 날.
네 말 한마디로
사람들이 조용해진 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눈치는
대답 없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럴수록 더 빨라진다.
“그래서 너는 배웠어.”
눈치가 말했다.
“내 마음보다
분위기가 먼저라고.”
그때부터 나는
관계를 무서워한 게 아니다.
관계가
삶의 기반이었던 사람처럼
살아왔을 뿐이다.
잃으면 끝이라고
믿어야 했던 사람처럼.
눈치는 이렇게 작동한다.
변화를 느낀다.
나 때문인지 묻는다.
나를 줄인다.
관계는 유지된다.
나는 비워진다.
관계는 남았는데
내가 사라진다.
눈치가 말했다.
“너는 편해지면 안 돼.”
그 문장이
가슴에 정확히 꽂혔다.
편해지는 순간
실수할 것 같고,
거절당할 것 같고,
버려질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나는
긴장을 유지한다.
눈치가 시키는 대로.
눈치의 핵심은
사실 두 가지다.
모름.
상대 마음을 모르는 순간
불안이 커진다.
그리고
잃으면 끝이라는 해석.
관계가 끊기면
내 가치도 같이 끊길 것 같은 두려움.
그래서 눈치는
이 말로 나를 묶는다.
나는 버려지는 걸 무서워하는 게 아니다.
버려질 기미를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이다.
나는 눈치에게 말했다.
“너는 센스가 아니네.”
눈치가 멈췄다.
“너는
두려움이네.”
눈치는 조용히 웃었다.
“그걸 이제 알아?”
그날
아주 작은 선택을 했다.
“상대 말투가 차가웠다.”
여기까지는 사실.
그다음은
보통 눈치가 대신 말해준다.
“네 탓이다.”
이번에는
멈췄다.
“지금 해석은… 보류하기로.”
그 말이
내 몸을 조금 살렸다.
눈치는
모름을 못 견딘다.
나는
모름을 잠깐 허용해 봤다.
눈치가 다시 말했다.
“그래도
너는 뭔가 해야 해.”
나는 물었다.
“왜?”
“관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나는 눈치를 바라봤다.
“관계를 유지하려고
나를 없애는 방식이
그게 진짜 유지야?”
눈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 나는
분위기를 복구하려고 웃지 않았다.
사과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나를 줄이지 않았다.
대신
이 말이 남았다.
“나도 여기 있어.”
눈치가 작게 말했다.
“너, 불편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살아있어.”
눈치는 멀어졌다.
멀어지면서도
끝까지 뒤돌아보는 눈이었다.
눈치는
배려가 아니다.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두려움이 만든 친절은
나를 사라지게 한다.
눈치를 보더라도
나를 숨기지는 않기.
그게
오늘 내가 정한
유일한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