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사람은
가능성이 없어서
멈추는 경우보다,
가능성을 느끼는 순간
멈추는 경우가 더 많다.
가능성은
기대와 함께
위험을 데려오기 때문이다.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곧
“안 될 수도 있다”는 감각을
같이 불러온다.
이때
사람은
아주 미묘한 선택을 한다.
가능성을
앞으로 끌어당길지,
아니면
조용히 뒤로 밀어둘지.
대부분은
밀어둔다.
왜냐하면
가능성은
노출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나아진 모습을
상상하는 순간,
지금의 나와
비교의 대상이 된다.
기대의 대상이 되고,
실망의 가능성도
함께 짊어진다.
그래서 대부분
이런 식으로
자기 가능성을 닫는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아.”
“괜히 더 욕심내면 안 돼.”
“이 정도면 됐어.”
이 말들은
겸손처럼 들리지만,
종종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다.
사람은
상처받을 가능성보다
아예 기대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고,
실패도
자기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성은
좌절로 꺼지는 게 아니라,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덮인다.
특히
어릴 때
가능성을 드러냈다가
다친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이 덮는 속도가 빠르다.
말했다가 무시당한 적,
시도했다가 조롱받은 적,
믿었다가
버려진 적.
그때 사람은
결론을 내린다.
“드러내면 아프다.”
“말하면 다친다.”
“기대는 위험하다.”
이 결론은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다.
몸이 기억한 판단이다.
그래서 성인이 된 뒤에도
사람은
자기 안에서
어떤 감각이 올라오면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꺼버린다.
설렘,
욕망,
확장되는 느낌.
그 감각이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익숙하게
다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자기 가능성을
포기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직 한 번도
끝까지 써본 적이 없다.
가능성은
사라진 게 아니라
보관 중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주 깊은 곳에
잠시 넣어둔 상태.
그래서 누군가의 인생이
작아 보일 때,
그건
능력이 작아서가 아니라
드러내지 않기로 한 선택이
오래 유지된 결과일 수 있다.
사람은
가능성이 없어서
작아지는 게 아니다.
가능성을
아프지 않게 관리하려다
점점
작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