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은 이미 정해졌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14화

by 베레쉬트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자기 삶을
설명하는 것 같다.




설명은
안정감을 준다.




“나는 이런 집에서 자랐고,”
“나는 이런 성격이고,”
“나는 늘 이런 선택을 해왔어.”




이 설명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문장이 된다.




“그래서
내 인생은 이래.”




이 문장은
체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예측이다.




사람은
불확실한 미래보다


예측 가능한 한계를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비록
그 예측이
불행을 포함하더라도.




그래서 사람은
과거를
미래의 증거로 사용한다.




“항상 그랬으니까.”
“매번 이랬으니까.”
“앞으로도 머 그렇지.”




하지만
이 논리는
의심해 봐야 한다.




과거는
방향을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경로를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사람은
경로를
방향으로 착각한다.




이미 지나온 길을 보고


앞으로 갈 길도
같을 거라고
결론짓는다.




이 착각이
운명이라는 이름을 얻는 순간,


사람은
선택을 멈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선택을 느끼지 못한다.




이미 정해졌다고

느끼는 삶에서는


무엇을 해도
새로운 선택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해봤자 똑같아.”
“어차피 나는 여기까지야.”
“내가 뭘 해도 바뀌지 않아.”




이 말들에는
절망보다
피로가 더 많이 섞여 있다.




계속 흔들리는 것보다


차라리
정해졌다고 믿는 편이
덜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명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피로 속에서
만들어진다.




사람은
너무 오래 버티면


가능성을
접는다.




가능성은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지나칠 수도 있다.




“정말 정해진 걸까?”
아니면
“그냥 너무 지친 걸까?”




대부분의 ‘정해진 인생’은
사실
중단된 탐색에 가깝다.




사람은
끝까지 가본 적이 없는 길을


이미 끝난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이 반복되면


자기 자신도
그 말을 믿게 된다.




그래서 인생이
정해진 것처럼 느껴질 때,


그건
예언이 아니라
자기 설득일 가능성이 크다.




사람은
자기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가
닫힌 이야기인지,


열린 이야기인지는



종종
자기도 모른 채
선택된다.





이제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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