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사람은
허전함을
그대로 두지 못한다.
잠시 느끼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그 상태로
머무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허전함은
아프지도 않고
당장 위험하지도 않지만,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허전함을
다른 무언가로
바꾸기 시작한다.
가장 흔한 대체물은
‘바쁨’이다.
일정을 채우고,
역할을 늘리고,
해야 할 일을
겹겹이 쌓는다.
바쁠 때
허전함은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바쁨이 멈추는 순간,
허전함은
더 또렷해진다.
그래서 바쁨은
해결이 아니라
유예에 가깝다.
그다음으로
사람들이 선택하는 건
‘관계’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으면
허전함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때의 관계는
만남이 아니라
의존이 된다.
상대가 멀어지면
허전함은
배로 돌아온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혼자다.
또 다른 대체물은
‘성과’다.
결과를 만들고,
인정을 받고,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쌓는다.
성과는
허전함을
잠시 눌러준다.
하지만 성과에는
끝이 없다.
하나를 이루면
다음이 필요해지고,
그다음이 없을 때
허전함은
더 공격적으로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허전함을
‘자극’으로 바꾼다.
강한 감정,
빠른 속도,
즉각적인 반응.
자극은
허전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자극은
금방 무뎌진다.
그래서 점점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진다.
문제는
이 모든 대체가
허전함을
없애지 못한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허전함은
채워야 할 구멍이 아니라
되돌아봐야 할 방향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허전함을
외부로 바꾸지만,
허전함이 가리키는 곳은
항상 내부다.
그래서 아무리
다른 것으로 바꿔도,
결국 사람은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이 질문은
바쁠수록,
관계가 많을수록,
성과가 클수록
더 조용히 따라온다.
허전함은
삶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다.
삶이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는
신호다.
나는 어디를 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