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허전함은
자체가
불편한 것은 아니다.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
허전함이 아니라
그다음에 따라오는
정적이다.
허전함이 오면
사람은
잠시 멈춘다.
해야 할 말이
사라지고,
다음 행동이
비어 있는 상태.
이 공백에서
사람은
자기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소리는
늘 또렷하지 않다.
애매하고,
정리되지 않았고,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불편하다.
사람은
설명 가능한 상태를
안전하다고 느낀다.
기쁨은 설명할 수 있고,
슬픔도 이유를 붙일 수 있다.
하지만 허전함은
이유가 없다.
원인이 분명하지 않고,
대상도 없다.
그래서 사람은
허전함을 느끼는 순간
무언가를 붙잡으려 한다.
핸드폰을 켜고,
생각을 돌리고,
사람을 찾는다.
정적이 길어질수록
불안은 커진다.
왜냐하면
그 정적 속에서는
도망칠 방향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너질 때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를
더 두려워한다.
무너짐에는
이유라도 있지만,
허전함에는
해명할 말이 없다.
그래서 사람은
허전함을
‘문제’로 바꾼다.
고쳐야 할 상태,
해결해야 할 감정,
없애야 할 공백.
하지만 허전함은
문제가 아니다.
그건
삶이 잠시
멈춰 서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사람은
늘 앞으로만
가려고 배웠다.
멈추는 법은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멈춤이 오면
불편해진다.
허전함은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방향을 바꾸라는
신호도 아니고,
더 빨리 가라는
채찍도 아니다.
허전함은
잠시
앉으라는 신호다.
그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물 수 있느냐가
사람을 갈라놓는다.
대부분은
그 자리에
앉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바쁘게 움직이고,
다시 채우고,
다시 달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같은 허전함을
다시 만난다.
나는 이제
멈춤을
허락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