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사람은
겉으로 보면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자주 허전해진다.
큰 문제가 없고,
당장 무너질 이유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어느 정도는 해내고 있는데.
그런데도
마음 한쪽이
비어 있는 느낌이 든다.
이 허전함은
결핍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꽤 많은 것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
왜냐하면
허전함은
‘없는 것’의 신호가 아니라
‘사용되지 않은 것’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사람 안에는
살아야 할 방향만큼이나
사용되어야 할 감각들이 있다.
기대하고 싶었던 마음,
나서고 싶었던 순간,
조금 더 말해보고 싶었던 생각.
그것들이
나쁜 선택이어서가 아니라,
안전하지 않아서
계속 미뤄질 때.
사람은
겉으로는 안정되고
안쪽에서는
조용히 텅 빈다.
허전함은
“더 가져라”는 신호가 아니다.
“덜 살아라”는 신호도 아니다.
허전함은
“네가 아직 쓰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몸의 알림에 가깝다.
그래서
허전함은
바쁠수록
더 선명해진다.
해야 할 역할이 많아질수록,
지켜야 할 위치가 많아질수록,
사람은
자기 일부를
조용히 접어두게 된다.
그리고 그 접힌 부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접힌 채로
남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성취의 꼭대기에서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평온한 일상 속에서
이유 없는
피로를 느낀다.
그건
지금 삶이 잘못돼서가 아니다.
지금 삶이
너무 정확해서
다른 가능성이
들어올 틈이 없기 때문이다.
허전함은
삶을 부정하는 감정이 아니다.
삶이
너무 보이는 것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신호다.
사람은
하나의 역할로만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나의 정답,
하나의 방식,
하나의 설명으로만
존재하도록
형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허전함은
무너짐의 전조라기보다
확장의 예고에 가깝다.
다만,
많은 사람은
이 허전함을
문제로 착각한다.
채우려 하고,
덮으려 하고,
바쁘게 만들어
느끼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허전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감정이 아니라
방향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방향을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