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사람은
바뀌기 직전에
이상한 시간을 지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노력도 했고,
생각도 많이 했고,
이해도 한 것 같은데
삶은 그대로다.
그래서 사람은
이 시기를
실패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공백은
실패가 아니라
재배열이다.
사람의 내부는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먼저
기존의 연결이
느슨해진다.
예전엔 당연했던 생각이
조금 어색해지고,
익숙하던 선택이
손에 잘 안 잡힌다.
이때 사람은
불안해진다.
“아무것도 안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많은 것이
이미 멈춰 있다.
자동 반응,
습관적인 설명,
반복된 자기 평가.
이것들이
잠시
흐름을 멈춘다.
문제는
이 정지 상태가
너무 조용하다는 점이다.
성과도 없고,
감동도 없고,
확신도 없다.
그래서
사람은
다시 움직이려 한다.
뭐라도 해야
살아 있는 것 같아서.
하지만
이 시기에
성급히 움직이면
이전 삶으로
되돌아간다.
왜냐하면
새로운 방향은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형태가 없는 상태를
견디기 힘들어한다.
정체성도
관계도
목표도
잠시 흐릿해진다.
이건
무너짐이 아니다.
낡은 기준이
해체되는 중이다.
사람은
새로운 기준을
얻기 전에
반드시
기존 기준을
잃는다.
그 공백을
통과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짜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변화 직전의 사람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그 말은
틀리지 않다.
그 순간의 사람은
아직
어떤 이름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름이 없다는 건
정체성이 사라졌다는 게 아니라
아직
굳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시기에는
조언도 잘 안 들어온다.
왜냐하면
기존 언어들이
이미
맞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필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시간이다.
정리할 시간이 아니라
가라앉을 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동안
사람의 내부에서는
기준의 위치가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이 공백을
견딘 사람만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나는 이 시간을
지나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