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종착지
하루를 보내는 동안에는
마음을 돌아볼 틈이 거의 없다.
정해진 일을 처리하고, 사람을 마주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다 보면
그날의 감정은 그 자리에 잠시 머물 뿐
정리되지 않은 채 남는다.
나는 늘 하루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혹은 불을 끄고 누운 뒤에야
낮 동안의 장면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그때서야 왜 그 말이 마음에 남았는지,
왜 괜히 서운했는지,
왜 아무렇지 않은 척했는지를 알게 된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감정을 미뤄두는 법을
먼저 배웠다.
지금 느끼는 마음보다
지금 해야 할 역할이 더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미뤄둔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하루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런 시간이 불편했다.
괜히 하루를 다시 곱씹는 것 같았고,
이미 지나간 일을 붙잡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시간이 있어야만
하루가 제대로 마무리된다는 걸.
하루가 끝난 뒤에 정리되는 마음은
대단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저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서 멈춘다.
누군가를 탓하지도,
나를 몰아붙이지도 않는다.
그렇게 하루를 정리하고 나면
다음 날을 조금 더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채 쌓일 때보다
나 자신을 덜 소모하게 된다.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뒤늦게라도 들여다보는 일이
결국 나를 지키는 방식이 된 셈이다.
모든 마음을 그 자리에서 표현할 수는 없다.
모든 감정을 즉시 이해할 필요도 없다.
다만 하루의 끝에서라도
그 마음을 돌아보고 인정해 주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오늘도 아마
정리되지 않은 감정 하나쯤은 남아 있을 것이다.
괜찮다.
그 마음은 밤이 되면 다시 말을 걸어올 테니까.
하루가 끝난 뒤에야 정리되는 마음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