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까 말까 고민될 때 돈으로 의지를 산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한다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서 계단을 내려갔다.
입구 왼쪽에 놓인 엑스배너를 지나 반 층 내려가자, 입구까지 이어지는 나머지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몸을 돌려 다시 내려가는 순간, 맞은편 벽을 가득 채운 책장 같은 신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안에는 운동화와 낡은 글러브들이 빽빽이 꽂혀있었다. 절반 이상은 오래된 듯 얇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나머지는 주인이 서둘러 체육관으로 들어가며 아무렇게나 밀어 넣은 듯했다. 한쪽 신발 위에 다른 한쪽이 올라타 있거나, 반쯤 튀어나온 채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간신히 걸려 있었다. 먼지에 덮이거나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커다란 무채색 운동화들을 보자 나는 일순 멈칫했고, 이내 체육관 특유의 눅진한 냄새가 코를 찔러 눈살이 찌푸려졌다.
방금 서둘러 밟고 내려온 계단 아래에는 낡은 세탁기가 달달달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안에는 운동복과 수건이 담겨 있는 듯했고, 세제 냄새가 코를 강타하듯 퍼지자마자, 아무리 강력한 세제로도 지워지지 않는 오래된 땀냄새가 은은히 공간을 매웠다. 대부분의 감각 정보는 시상(thalamus)을 거쳐 대뇌피질에서 해석되지만, 후각만은 시상을 거치지 않고 직접 변연계(limbic system)로 전달되어 감정과 기억을 즉각적으로 자극한다. 냄새는 들어오는 즉시 나의 편도체(amygdala)를 활성화시켜 '싫다, 두렵다'는 정서적 반응이 무의식적으로 나를 압도했다. 수년간 다양한 사람들의 땀이 켜켜이 누적된 이런 공간에서 나는 좋은 기억이 없었다. 냄새는 대체 어디 들어있었는지 잊고 있던 나의 운동에 대한 열등감, 이를 극복하려던 어설픈 시도들, 잘하지 못해 흥미를 잃고 버티듯 이어가다가 결국 포기로 끝난 수치스러운 장면들을 저장한 기억의 서랍을 마구 열어젖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냄새 자극이 부정적인 감정과 수치스러운 기억을 불러일으키자, 생존을 위한 자율신경계 반응으로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며 몸이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난 것이다. 그제야 나의 전전두 피질(prefrontal cortex)이 뒤늦게 반응하여 이 행동을 합리화하려 들었다.
'너무 충동적인 거 아니야? 운동신경도 없는 주제에 무슨 킥복싱이야? 운동을 하고 싶으면 그나마 잘할 수 있는 걸 해, 어차피 몸개그하다가 포기할게 뻔하잖아. 지금 벌려놓은 일도 많은데, 그거나 제대로 해. 왜 돈 주고 수치심을 사려고 하니? 이해? 네가 걔를 어떻게 이해해? 순진한 척하면서 교만 떠는 거 아니야?'
도전은 언제나 해야 할 이유보다,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더 많은 법이다. 이건 내가 '겁쟁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의 뇌 구조와 정서 시스템이 본질적으로 '위험 회피'에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전이 위험보다 보상으로 인식되기 어려운 이유는 뇌의 진화적 설계 때문이다. Kahneman과 Tversky가 말한 손실 회피(loss aversion) 현상에 따르면, 같은 크기의 이득보다 손실이 약 두 배 강한 정서적 감정을 일으킨다. "성공하면 좋을 거야"보다는 "실패하면 망할지도 몰라"가 훨씬 더 큰 감정적 무게를 갖는다. 편도체는 생존과 직결된 실패, 거절, 수치, 상실과 같은 위험 신호에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기에, '도전'을 자동적으로 '생존 위협'으로 인식하게 된다.
위험회피 성향이 높은 나의 강한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 논리와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 피질이 용기 있는 나의 행동을 지지해주어야 했지만, 나의 논리 역시 '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렇네. 나 지금 순진한 척 교만 떨고 있나? 혹시 내가 지금 시도하려는 게 가난이나 난민 체험 같은 건가?'
나의 도전정신은 어느새 윤리적 수치심으로 탈바꿈했다. 이성적 억제와 감정적 저항이 모두 '도망치라'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직 반 층밖에 내려오지 않았던 나는 자연스럽게 계단을 다시 올라가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동안 이곳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때처럼 방금 나의 충동적인 행동을 기억에서 완전히 삭제 가능한 상태였다.
무모한 도전을 앞두고, 편도체(amydala)에서 유발된 불안과 두려움이 압도하는 하늘 아래,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은 논리적 근거들을 연쇄적이고 산발적으로 땅바닥에 떨어뜨린다. 불안한 하늘과 땅바닥에 즐비하는 상반된 행동 지침들 사이에서 전대상 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은 전전긍긍하며 "그래서, 이걸 해? 말아?"의 진동 상태를 일으켰다. 감정과 충동을 억제하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나의 전전두 피질은 피로해졌고, 순간적으로 억제 회로가 완화되었다. 그 틈을 타 기저핵(basal ganglia)의 행동 개시 신호가 상대적으로 강해졌고, 운동 피질(motor cortex)이 활성화되어 의식하지도 못한 채 내 발은 남은 반 층의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고, 내 손은 체육관의 문을 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문을 열자마자 리셉션에 앉아 있던 남녀가 동시에 밝게 웃으면서 나를 맞았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의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전해져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둘 다 단순한 검은색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수년간의 규칙적인 운동으로 다져진 아름다운 몸에는 산업화의 폐허인 과잉과 잉여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을 때, 돌 속에 이미 존재하는 형상을 해방시키는 일이라고 했던가. 신이 인간을 만들며 기대했을 가장 아름다운 신체의 형상을, 그들은 운동을 통해 찾아내고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존재를 마주하자, 대충 먹고살아 체지방이 쌓인 배와 구부정한 자세가 의식되었다. 나는 등과 허리를 곧게 펴고 밝게 인사하며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내가 여자라서 그랬는지, 남자 선생님은 자리를 피해 주었고 여자 선생님이 체육관의 운영 방침과 프로그램을 설명해 주었다. 외형적으로도 아름다운 그녀에게서 기분 좋은 에너지가 전해졌다.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공격적 충동을 사회적으로 안전하고 자기 조절적인 방식으로 방출하는 행위인 운동을 통해, 공격성을 생명력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은 특유의 밝은 에너지가 있다. 그들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긍정적인 정서는 내 무모한 도전 정신에 묘한 위로를 주었다.
본 체육관의 집단 프로그램은 주중 5회, 오후 6시, 7시, 8시 세 차례 진행된다. 회원은 원하는 시간대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고, 원한다면 하루에 세 번 모두 들을 수도 있다. 각 회기는 20분 체력운동으로 몸을 풀고, 20분간 킥복싱 수업을 진행 한 뒤, 10분 마무리 운동으로 구성된다. 참여자의 수준을 나누지 않고 함께 진행되며, 수업 중 선생님이 개인별 지도를 병행한다고 했다. 지금 나를 상담해 주는 예쁜 선생님이 바로 그 수업을 맡는다고 했다. 나는 이 설명에 숨어있는 함정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한 달 치를 등록했다.
인간이 특히 시각적 아름다움에 취약한 이유는, 시각 정보가 대뇌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영역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뇌피질의 약 30-40%가 시각 정보 처리에 관여하는 반면 체감각은 8-10%, 청각은 약 3%, 후각과 미각은 훨씬 적은 비율만을 차지한다. 진화적으로 시각 정보 처리가 생존과 짝짓기, 사회적 판단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생존적 안정감의 신호를 시각적으로 해석한 결과이며, 인간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통해 존재를 느끼도록 진화한 생명체다. 뇌는 아름다움에 속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의미와 생존을 확인하는 존재인 것이다.
'실패해도, 예쁜 선생님 얼굴 보러 온다고 생각하고 위로받자'
많은 책임과 무게를 짊어지며 사는 독립한 어른의 삶에서, 어쩌면 가장 큰 장점은 돈으로 의지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돈으로 의지를 조금 구매했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