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복싱장의 이상치(outlier)-3

소속되지 못한 마음이 이르는 곳

by 무병장수

인생은 선택의 문제지만, 선택 그 자체보다 일단 선택을 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부분이 우리 인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선택의 결과가 되돌리기 어렵다면 신중하게 해야 하고, 선택을 한 이후에는 그것을 통해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보다 성숙한 태도일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나의 주요 목표는 운동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상치가 되는 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경험되는 생생한 감정, 사고 및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를 실험체로 두고 탐색적 사례 연구를 위한 판을 짜서 막상 그 안에 들어가고자 하니, 섣불리 누군가를 이해하려 든 나의 계획은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실질적이고 생생하게 내가 곧 직면하게 될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고통; 어쩌면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설렘, 당연히 그럴 리가 없는 나는 왜 이런 짓을 벌렸는가 싶은 후회와 열등감, 그리고 함께 운동하는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및 나를 가르치다 속 터질 선생님의 스트레스, 그리고 그것을 보고 더 큰 스트레스받을 나, 이런 두려움들이 보다 생생하게 피부에 와닿았고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푹 내쉬어졌다.


잠시 집에 들러 평소 산책할 때 입는 편안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첫 수업 시간이 시작하기 10분 전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약 15평 규모의 직사각형 체육관 안에는 약 대여섯 명의 비슷한 체격의 남자들이 체육관이 제공하는 검은색 상하의를 똑같이 입고 쉐도우 복싱으로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인간은 타인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다. 특정 맥락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로 집 근처를 산책하는 개인이었을 때 나의 옷차림은 적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체육관 풍경 속을 자연스럽게 채우고 있던 사람들 속의 나는 너무 눈에 띄었고, 나는 아찔했다.

나는 도대체 어쩌자고 민트색 반팔티에 자주색 운동복 바지를 입고 이곳에 온 것일까? 체육관이라는 맥락 안을 자연스럽게 채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거울삼아 바라본 내 모습은 지나치게 이질적이었고,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체육관 벽은 흰색으로 페인트칠되어 있고, 탄성매트바닥은 진회색이며, 한쪽에 나란히 붙어 있는 커다란 샌드백들도 모두 검은색이다. 한쪽에 빼곡하게 배치해 둔 공용 글러브와 킥미트같이 작은 소품들마저 전부 흰색과 검은색이다. 무채색으로 가득 찬 이 공간,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 속 나는 유난해 보였다.


갑자기 공간의 낯선 기운이 사방에서 나를 짓눌렀다.


애써 당당한 척 펴고 있던 어깨는 앞으로 굽고, 꼿꼿하게 들고 있던 고개가 푹 숙여져 시선이 발등으로 떨어졌다. 위축된 기분이 드는 동시에 내 안에서 간절한 소속 욕구가 솟구쳤다.

'절대 튀기 싫다, 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흡수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반사적으로 카운터 앞에 질서 있게 접혀서 정리된 공용 운동복 상하의를 집어 들고 서둘러 탈의실로 들어갔다.


아크릴 소재의 검은색 반팔 상하의에는 흰색으로 체육관 이름이 위풍당당하게 쓰여있었다. 이걸 입고 저 공간에 있으면 위장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일었다. 보풀이 곳곳에 일어나고 섬유유연제로 가려지지 않는 묵은 땀냄새가 배어 시큼한 향기를 내뿜는 운동복을 양손에 들고 지긋이 바라보았다. 아크릴은 면보다 흡수율이 낮고 수분을 섬유 표면에서 빠르게 증발시켜 공용 운동복으로 이용하기 적합하다. 그러나 흡습성과 내구성이 낮아 냄새가 잘 배고, 소재가 빨리 상한다. 그러나 체육관 이름이 볼드체로 크게 새겨진 유니폼을 입음으로써 저 공간 속에서 공유할 수 있는 동일시에 대한 욕구는 취향이나 선호 같은 개성화 욕구를 한순간에 제압했다. 공용 운동복으로 서둘러 갈아입고 거울에 반사된 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 지금 머리도 짧고, 키도 여자치고 평균보다 크고, 어깨도 넓으니까 저기서 눈에 덜 띄겠지?'

안도의 한숨을 한번 푹 내쉬고 다시 용기를 내 마음을 다잡고는 탈의실 밖으로 나갔다.


'젠장. 망할.'

그사이에 사람이 더 늘었고 생활체육인의 분위기를 내뿜는 그들은 전부 남자였다. 낯선 환경에 놓였을 때 인간은 나와 비슷한 사람을 본능적으로 찾게 된다. 비슷한 성별, 나이, 실력의 사람이 있으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동시에 이 낯선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잡을 수 있다.


성별과 체격에서 공통점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은 틀렸고, 서둘러 초보자 같아 보이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봤지만 무아지경으로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있는 세명은 누가 봐도 초고수, 바닥에 앉아 손에 핸드랩을 묶고 있는 두 명도 손동작이 자연스러운 것이 고수의 냄새를 풍긴다. 셋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적어도 몇 개월 이상은 함께 운동하면서 쌓은 친밀감을 뿜어낸다.


'그래, 역시 나는 여기서 가장 뒤처질 거야.'라는 예감은 확신이 되었다. 지금 여기 킥복싱을 잘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무능한데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좌절감을 눈으로 확인하자마자 극심한 두려움과 무력감이 몰아쳤다. '나만 뒤처질 거야'라는 생각은 평소 내가 나에 대해 갖고 있던 정체성을 위협했다. 체육관 밖에서 내가 나에 대해 갖고 있던 안정적인 유능감의 구성요소는 체육관 안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호날두라도 갑자기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라고 시험장에 앉쳐두면 어찌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체성이 흔들리는 순간, 편도체(amygdala)는 공포 신호를 쏘아 올렸고 불안 경보가 울리면서 시상하부(hypothalamus)로 위험 신호를 보내자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심박수가 증가하고 근육이 긴장되었다. 원래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면 가만히 서서 전체 환경을 차분하게 조망하는 것을 좋아하던 나였지만, 긴장 상태는 전전두엽(prefrontal lobe)의 기능 저하를 일으켜 주의의 폭이 좁아지게 만드는 동시에 억제 기능을 저하시켜 가만히 있기 힘들었다.


'젠장, 아직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8분이나 남았다니!' 차라리 수업이 시작되면 잘하든 못하든 주어진 과제에 최선을 다할 텐데, 이 애매한 시간을 자연스럽게 소진할 심리적 여유가 없고 코너 한쪽에 차분하게 있는 것이 더 힘들다고 판단했다. 나는 워밍업을 하는 척하면서 체육관을 크게 몇 바퀴 돌며 시간을 소진하기로 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한발 한발 맨발로 탄성매트의 촉감을 느끼는 척하며 걸었지만 실제 내 신경은 온통 '진짜 못할 것이다, 나는 이 공간에서 수용되지 못할 것이다'라는 생각에 몰입되어 있었다.


이 낯섦과 불안의 감각은 내가 병원에서 만나는 소외된 아동의 정서와도 닮아 있었다. 집단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아동에게 쉬는 시간이 더 힘든 이유는 쉬는 시간은 학습 시간이 제공하지 않는 사회적 불확실성과 관계적 위협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유능해 보이는 무리 주변을 홀로 서성이면서 느껴지는 부정적(일 것 같은) 시선, 말을 걸었다가 거절당할 것 같은 위험은 사회적 위협으로 편도체를 더 자극했고 불안은 더 증가하고 몸은 더 긴장되었다.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반가운 선생님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선생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검은 옷을 입은 무리는 한 팀처럼 운동을 시작했고, 그들 틈에 자연스럽게 숨어든 것 같은 이 기분, 감각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체육관을 몇 바퀴 뛰는 것을 시작으로 기본 맨몸 크로스핏 WOD을 약 20분간 수행했다. 나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루틴을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 해냈고, “처음인데 생각보다 잘 따라오시네요”라는 칭찬을 듣고 심지어 들떴다. 그러나 그렇게 악착같이 버텼던 대가는 며칠 쉬, 족저근막염이라는 예상치 못한 이름표로 돌아왔다.


체육관에서 나를 덮친 낯섦과 소외감, 그 공간에서 느낀 떨림과 위축감은 학교 맥락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교실에서 보이는 방황과 서성거림이 단순한 행동 문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속의 위협에 대한 반응임을 온몸으로 깨닫는 시간이었다. 내 발끝에만 시선이 고정되어 있던 그 몇 분 동안, 교실 뒤를 어슬렁거리던 아이들은 주의가 산만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마음을 가까스로 견디고 있었음이라. 체육관 한복판에서 겉돌던 나처럼 그 아이들 또한 교실이라는 공간에 스며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고 어쩌면 덜 외롭고 덜 두려운 곳을 찾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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