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은 남은 자를 위한 위로의 시간
고작 4년 빨치산으로 활동한 선택의 댓가로 20년의 감옥생활.
그 이후에도 가난한 오지라퍼로 생활하다가 치매에 걸려 장렬하게 자살한 아버지를 둔
냉정한 합리주의자 딸이 아버지의 장례식 삼일동안 문상객을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을
담담하고, 애뜻하고, 희극적으로 표현된 작가의 자서전적 소설이다.
모든 인간에게 삶은 고통이고, 죽음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실패한 혁명가로서 남들보다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간 아버지는 죽음을 통해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않을까 딸은 생각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이 선택한 사회주의의 정치적 실현의 실패를 인정하고,
그 사상을 사랑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였던 '민중을 위한 박애주의'를 동네의 프로 오지라퍼로서 소소하게 실천하며 살았으니 자신의 가치관을 따른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이다.
사람의 자원은 유한하여 만인을 위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자신 및 자신과 직접 관계된 가족에게 상대적으로 무신경할 수 밖에 없고,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딸은 장례식을 통해 비로서 아버지를 이해했다.
동시에 아버지의 생전에 냉정한 합리주의자로서 아버지를 냉소적으로 대했던 지난날의 자신을 반성했다.
그러나 사상을 공유하며 동지애로 남편을 이해했던 어머니와 달리, 가치관을 형성하기도 전에 피해의 책임을 오롯히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자신만의 사상을 형성하게 된 어린 딸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냉정한 합리주의자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이 그를 혐오하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있었던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죽음을 통해 이해받는 것이 망자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독자는 아쉬움을 느낄수 있다.
그러나 장례식은 망자를 이해할 수 있는 남은 자를 위한 시간으로서 의미가 있다.
결국 계속 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남은 자, 우리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