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에 집착한 개인주의의 덫
팬더믹 이후 원격 유연근무가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되고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업무 효율성이 증가되었지만, 노동자의 업무 로딩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 비밀. 착취적인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조직의 구조적 문제나 정책적인 해결책이 수반되어야 하지만, 노동자 개인의 개인주의 성향에 주목한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빠르게 유동하는 현대사회에서 기업도 존폐를 알 수 없으므로, 노동자는 고용불안정의 두려움 속에서 끝없는 자기 계발과 유연성을 강요받는다. 결국 좋은 일자리는 제한적이고 유연근무의 선택권 또한 이를 협상할 수 있는 소위 엘리트 그룹에서만 가능한 것이므로 비슷한 지적 능력을 가진 노동자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 기업이 요구하는 문제 이외에, 여기에 순응하는 개인도 자신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에 헌신해 왔는지 정당화하기 위해 일이 중요하다고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면도 있다. 결국 자기 스스로 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나의 인간으로서 의미와 존엄성을 업무라는 이름의 하나의 과업을 완수하는데만 몰빵한 것이다. 주식투자를 할 때도 하나에 몰빵 하면 결국 망하듯 인생의 과업 완수를 업무에만 몰빵 하면 남는 것은 번아웃뿐이다. 특히 내 회사도 아닌, 남의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봤자 결국 유리 천장에 도달해서 더 올라갈 데도 없고 현상 유지를 감사해야 하는 이 노동자의 비참함…
그 이면에는 내가 기여한 만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공정성’에 집착한 지독한 개인주의 성향이 있었다. 개인주의는 신자유주의의 핵심 교리로 ”우리 자신을 협력하지 않는 경쟁자로,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공유하지 않고 쌓아두는 자로, 주지 않고 받는 사람으로, 도움을 주지 않고 내모는 사람으로, 이웃을 위해 함께 하기에는 너무 바쁠 뿐 아니라 이웃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으로 만든다. 개인주의는 우리가 스스로 가치를 입증하는데 집착하도록 몰아간다. 우리의 자리가 왜 위태로운지 궁금해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그 자리를 착실히 지켜낼 수 있는지에 집착한다. 이것이 생산성에 집착하게 만들어 번아웃과 불안을 야기하고 깊은 소외감을 비롯한 고통의 원인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자신을 직장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해야 한다. 원격 유연근무로 애매해진 업무와 개인적인 삶에 거리 두기와 경계 지키기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가까운 친구 및 가족 관계를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누구를 지원하고 싶고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고 무엇을 위해 싸우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 결국 나의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일 하나에 몰빵 해서 얻어내는 단 하나의 성과가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다양한 경험과 체험도 균형 있게 유지하면서 얻는 안정감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