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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병장수 Sep 06. 2023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_마쓰이에 마사시

삶은 예술이 아닌 현실이다

책의 주인공인 사카니시 도오루의 일인칭 시점 소설로 ‘나’는 건축학과를 막 졸업하고 국내에서 존경받는 칠십 대 중반의 건축가인 무라이 슌스케의 설계 사무소에 이례적인 행운으로 입사한다. 해당 사무소는 도쿄에 본사가 있고 여름에는 온 사무실이 가루이자와라는 조용한 별장지에 있는 여름 별장으로 옮겨가서 일을 한다. 책의 대부분은 가루이자와의 여름 별장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경합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별다른 드라마 없이 노년의 한 건축가의 건축에 대한 철학과 열정을 존경하고 공감하는 직원들의 일상이 담담하고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여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나도 주인공과 함께 숲 속 여름별장에서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은 흙과 나무 냄새를 맡고, 곤충과 새들의 지저귐 소리를 들으며 성숙한 스승의 삶의 지혜를 배우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 속에 묘사된 건축 사무소는 참 이상적이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건축가는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을 벌이거나 의뢰된 일들을 무리해서 도맏지 않고, 가치관에 부합하고 자신이 한 팀의 수장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도로 직원이 열명 남짓의 작은 사무소를 유지하며 그 규모에 맞는 일만 선택하여 보수까지 책임진다. 이러한 소규모 장인정신 철학과 그 뜻을 존중하여 모인 팀원들이 이루어낸 작품은 아름답게 유지될 수밖에 없고, 사무소는 오히려 희소성 있는 명품이 되어 직원들에게 최고 대우를 해줘 직원들도 그를 스승으로 존경하며 따른다.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결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만든 조직의 이상적인 모델을 보면서 나도 이런 조직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공감을 배우기 전에 경쟁을 배우고, 한 분야에서 전문성이 정점에 이를 나이인 40대 조기은퇴/파이어족을 목표하는 현대 사회에서 과연 이런 조직이 가능한가 의문이 들었다. 소속감과 유대감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데 어느새 돈을 중심으로 관계가 형성되어 조직의 수장은 직원을 헐값에 착취하려고 들고, 직원은 주어진 일을 단순한 노동의 대가로 환산해 최소한의 에너지만 쏟는 방식으로 방어하는 구조에서 과연 이런 조직이, 이런 조직에서만 만들 수 있는 명품이 나올 수 있을까?


소설 속 사무소 직원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목적성이 명확하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설령 목표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과정에서 얻은 부분에 집중하고 결과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여 점점 성장해 나간다.


건축과 삶의 밀접성을 통해 기본을 잘해야 큰 일도 잘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결국 유한한 시간 속에서 인생도 업적도 그 가치와 상관없이 소멸되므로 목표 자체보다는 과정 속에서 얻은 경험의 중요성을 짚는다. 홀로 안전하게 장수하며 타인의 고통을 방관하면서 안도하는 것보다는 함께 재난과 그 고통을 견뎌내 나아가는 삶이 어쩌면 더 의미 있음을 말해준다. 삶은 예술이 아닌 현실이기에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에는 결이 맞고 신뢰하는 사람들과 서로 협동하며 살아가는 것의 가치를 보여준다.


삶은 무거운 현실과 쉼이 반복돼야 지속할 수 있다. 그 반복이 켜켜이 누적되고 쌓여 현재의 ‘나’를 이루고, ‘나’는 경험을 통해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과 태도를 갖추어 나가면서 가치관이나 신념을 형성한다. 어떤 일은 신념을 갖고 해 나가야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 설득의 힘은 수려한 말솜씨가 아니라 평소 내 행실에 달려 있다. 전달력 없는 신념을 고집하는 것은 아집이다. 부하 직원들이 리더인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요즘애들은’이라며 불평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인간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건축은 예술이 아닌 현실 그 자체이므로 건축은 준공되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숨결이 부여된다. 내게 주어진 현실을 직시하자. 수용할 수밖에 없는 불행은 수용하면서 동시에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주목하여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책임감 있고 합리적으로 살아가한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과 그 책임을 지며 이루어낸 것이 현재의 ‘나’이다. 자신의 방정리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지구 온난화를 논하면 설득력도 없고 그것은 단지 아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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