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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병장수 Sep 02. 2023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_무라카미하루키

Pain’s inevitable, suffering’s optional

무라카미 하루키가 40대 중반 ‘달린다’는 행위를 매개로 소설가로서 또 한 사람의 ‘어디에나 있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정리한 회고록이다.


고된 육체노동이 주인 식당을 운영하며 틈틈이 쓴 단편으로 데뷔한 후 전업 작가로 전향하게 되면서 살이 찌고 건강이 나빠지자 건강을 위해 시작한 달리기. 그에게 달리기는 신체적으로 유익한 운동인 동시에 인생의 메타포이기도 했다. 매일 달리면서 조금씩 목표를 높여가며 그것을 달성하는 데 따라 자신의 향상을 도모한다.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한다. 그것은 결코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아닌,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마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목표 달성이 아닌 여정이듯, 장거리 달리기에서 이겨야 할 상대는 다른 무엇도 아닌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40대 중반을 넘어선 이후부터 그러한 자기 검증 시스템은 한계를 맞게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신체 능력의 피크를 맞이하며 그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세상에는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산만큼 있고,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산더미처럼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서 페이스를 지키며 느긋하게 풍경을 바라보며 달리는 방식으로 수용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각 사람마다 각자의 가치관이 있고, 그에 따른 삶의 방식이 있다. 그 차이는 일상적이고 조그마한 어긋남을 낳고 이런 엇갈림이 모이고 쌓여 커다란 오해로 발전할 수 있다. 그 결과 까닭 없는 비난을 받기도 하며, 그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며, 깊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이 듦에 따라 그러한 괴로움이나 상처는 인생에 필요한 것이다. 타인과 얼마간이나마 차이가 있어야 자아를 형성하게 되어 자립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소중한 자산이므로 타인과의 차이나 갈등으로 인해 느낀 마음의 상처는 지불해야 할 대가인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나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으므로 일부러 달리기를 통해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감으로써 고통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비난받았을 때 혹은 당연히 수용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는 일부러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달림으로써 자신을 육체적으로 소모시킨다. 그리고 나 자신이 능력에 한계가 있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육체도 근소하게나마 강화되는 것은 오히려 덤이다.


매일 훈련한 만큼 근소한 변화를 가시적으로 확인하며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나가며 고통스러운 삶의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가는 수단으로써 달리기를 이용한 것이다. 한편 어떤 프로세스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변경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과 어쩔 수 없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면, 힘들지만 회피하거나 포기하기보다는 집요한 반복에 의해 서서히 자신을 변형시키고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 또한 달리기로 깨닫는다. 노력해도 잘 안 됐을 때 신체든 환경이든 당시 일시적인 컨디션이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냥 받아들이고 다만 ‘좋아 잘 달렸어’라는 느낌이 회복될 때까지 기죽지 않고 열심히, 타인의 만류에도 개의치 않고, 설령 기록이 떨어진데도 완주를 목표로 예전과 같이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에게 달리기가 그랬듯,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계속하고 있으면 거기에 뭔가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나는데,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에게 적절한 이런 메타포이자 수단을 갖고 있으면 신체/정신 건강 유지에 정말 좋은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기만 한 것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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