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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병장수 Sep 26. 2023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_안톤 체호프

자기애가 만든 공허함 속 위선적인 사랑

물질주의적 세계에서 위선과 자기기만으로 가득 찬 결혼 및 도시 생활의 공허함을 주제로 한 거장 안톤 체호프의 간결하지만 섬세한 사실주의 단편소설.


중년의 은행원 구로프는 십 대 자녀를 둔 다정한 아버지로 경제적/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여러 여자들과 바람피우는 것을 유쾌한 모험으로 여기고, 여자들과 연애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그는 얄타 해변에서 고위 공직자로 일만 ‘노예처럼’하는 남편에게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우울한 이십 대의 젊은 유부녀 안나를 만난다. 여자를 유혹하는 것을 통해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매력적인 중년 남자와, 사랑과 관심에 목마른 외로운 젊은 유부녀는 짧게 불륜을 즐기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지만 서로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다가 사랑을 깨닫는다. 가정을 버릴 수도 없고 사랑을 포기할 수도 없는 그들의 사랑은 서로가 지닌 허위의 삶 속에서 더욱 깊어지며 괴로워한다. 이들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일까?


삶은 현실이고, 현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물질적인 조건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물질주의적인 조건만을 갖추고 남들에게 그럴듯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고자 허세를 부리는 삶을 사는 인간은 공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신뢰 속에서 가정 구성원들 각각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지면서 협력하여 이루는 것으로 만일 자신의 삶이 안정 궤도에 올랐다고 느낀다면 이것은 단지 나만의 노력이 아니라 아내 및 자녀의 도움도 분명히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신뢰하면서 가족이라는 유대감과 소속감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다. 구로프는 자신이 이루어낸 안정적인 삶을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라고 착각하고 자녀를 낳고 함께 중산층의 삶을 이룩한데 기여한 아내를 천박하고 촌스럽다며 평가절하한다. 자기 안에 자기애만 가득 찬 인간 속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오직 그 자신의 매력을 존재 가치를 확인시켜 줄 일시적 대상만 있을 뿐이며 여기에 기반한 가벼운 사랑은 쉽게 식고 결국 “짜증 나고 지겨워져 버린다”.


젊고 어린 스무 살의 안나는 호기심이 많았고 더 나은 멋진 삶을 살기를 기대하면서 근면한 일중독자인 부자 남편과 결혼한다. 그러나 타인을 통해 자신의 삶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돈만 보고 결혼을 했다면, 그가 제공하는 돈과 안락한 생활을 사랑의 증거로 받아들이고 만족해야 깔끔하다. 그 이상의 정서적인 충족까지 요구하면 균열이 시작된다. 돈과 사랑을 모두 준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시간은 유한하고 그녀가 그를 선택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을 부의 유지에 시간을 많이 쏟다 보면 정서적으로 그녀를 충족시켜 줄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결국 그녀는 외로운 자신을 알아봐 준, 자신보다 두 배나 나이 많은 애 딸린 유부남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여긴다. 멋진 삶에 대한 기대가 타인으로부터 사랑받는 것뿐인 여자의 애정욕구는 결코 채워질 수 없다. 상대방의 모든 관심이 자신에게만 향하지 않으면 ’ 사랑이 식었다 ‘며 징징거리기 시작하고 결국 자신도 상대방도 지쳐버리게 한다.


다만 서로 불륜이라는 조건이 허용하는 결핍이 그들의 관계를 더욱 짜릿하고 열렬한 사랑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만든 불행 속에서 자신의 허상을 충족시켜 주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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