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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otrekker Dec 22. 2015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크기와 거리가 무너지다

돌로미테 트레킹 1일


오랜 시간 고대했던 트레킹이었다. 반 년이 흘러 사진을 빌리지 않으면 풍광은 아련하고 감정은 아득하다.


자전거로 오른 이들이 아론조 산장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다. 트레킹은 이곳에서 시작한다.


[트레킹 1일: 4시간]

아론조 산장 → 로카텔리 산장 → 아론조 산장


하룻밤을 머문 코르티나 담페초Cortina d'Ampezzo에서 아론조 산장Rifugio Auronzo까지 버스로 약 1시간 이동한다. 버스의 엔진은 무척 힘이 좋고 부드러워 경사가 급한 길을 소리 없이 오른다. 이에 질까 거친 숨을 내쉬며 터질듯한 허벅지들이 페달을 밟고 오른다. 이곳 구비구비 거친 산길엔 사이클 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현지 날씨를 보며  안타까워했는데, 역시나 트레킹  첫날 새벽 비가 내린다. 트레킹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아침식사를 하고 비옷을 입는데 다행히도 비가 그친다. 비가 내려 구름이 낮게 깔린 해발 1,000m의 작은 도시는 상쾌하다.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는 구름에 가려 볼 수 없을 터, 그래도 먼 곳 와서 첫날 트레킹을 할 수 있어 발걸음이 가볍다.



이곳의 산장은 우리나라의 산장(대피소)과는 다르다. 숙박은 물론 식사도 가능하다.  점심시간이 애매하여, 출발지인 아론조 산장에서 간식 같은 점심을 먹었다. 제아무리 짧은 거리의 트레킹이어도 먹어야 걸을 수 있다. 바케뜨만큼 딱딱한 빵을 갈라 프로슈또를 몇 장 넣었는데 먹을 만하다.


1차 세계대전 희생자들을 기리는 교회


이 길을 동네 뒷산처럼 다닐 듯한 트레커 한 쌍이 내심 부럽다.


트레일 근처에는 1차대전 당시 쌓은 석벽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멀리 라바레도 산장이 보인다.


아론조 산장에서 로카텔리 산장Rifugio A. Locatelli까지는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고 평탄한 길이 놓여 있다. 비가 그쳐 좋아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구름이 잔뜩 끼어 조망이 좋지 않은 게,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몇 분 걸었을까, 1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은 교회를 지난다. 이 거친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산악부대가 목숨을 잃은 그 길, 구름을 야속해하며 걷는다. 라바레도 산장Rifugio Lavaredo을 지나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옆을 넘는 고개에는 지난겨울에 내렸을 눈이 남아있다.


언덕을 넘으니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3,000미터에 육박하는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세 봉우리는 자신들의 크기와 자신들과의 거리를 무너뜨린다. 크기와 거리가 무너지나 마치 미니어처를 보는 것만 같다.


끝내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는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구름에 휩싸인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로카텔리 산장을 떠나는 일행들


로카텔리 산장에서 한참을 쉬다가 다시 아론조 산장으로 돌아왔다. 한번 걸어서일까, 돌아올 땐 언젠가 걸어본 듯도 하다. 물론 이국적인 풍광은 여전히 낯설다.


트레킹 첫날은 걷는 시간도 짧고 호텔로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라, 내일부터 시작할 본격적인 트레킹이 더욱 기대된다. 숙소로 돌아와 창밖을 보니 북서쪽으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로카텔리 산장에서 돌로미테 산군Dolomiti을 본 게 꿈만 같다. 떠나오기 전 검사받았던 무릎은 아직 괜찮다.


코르티나 담페초로 돌아오는 길, 미주리나 호수Lago di Misurina


숙소에서 바로 본 북서쪽 하늘. 파란 하늘이 보인다.



남티롤Südtirol

이탈리아 북부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Trenstino-Alto Adige 주에 있는 지역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으나 1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에 속하게 되었으며(생제르맹조약, 1919년), 1972년 자치권을 획득했다. 주민 과반 이상이 독일어를 사용한다. 이탈리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희망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 돌로미테 산군은 이곳에 있다.


돌로미테Dolomiti

이탈리아 북동부 지역(남티롤)에 있는 동알프스 산군이다. 석회암과 백운암으로 이뤄진 거봉이 즐비하다. 알타 비아Alta Via를 비롯하여 많은 트레일이 마련되어 있고 반나절 거리마다 산장이 있어 트레킹 계획을 자유롭게 세울 수 있다. 트레킹은 물론 비아 페라타, 클라이밍, 그리고 산악 마라톤, 사이클, 스키 등 자연을 만끽하며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

돌로미테의 상징인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는 ‘라바레도의 세 봉우리’라는 뜻이다. 서쪽부터 가장 작은 봉우리라는 치마 피콜로Cima Piccolo, 2,857m, 제일 크다는 치마 그란데Cima Grande, 2,999m,  동쪽 봉우리라는 치마 오베스트Cima Ovest, 2,973m가 나란히 서있다.


산장Rifugio

돌로미테의 산장은 숙박과 식사가 가능하다. 트레킹 코스를 따라 반나절 간격으로 있는 편이다. 산장에서는 이탈리아어와 함께 독일어를 사용한다. 함께 트레킹을 한 일행은 몽블랑 쪽보다 시설이 훨씬 낫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트레킹을 할 계획이라면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트레킹 중에는 통화하는 게 힘들지만, 산장 주변에서는 현지 통신사를 이용하면 가능하다. 와이파이는 유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여행사

첫 해외 여행이자 첫 해외 트레킹을 홀로 갈 자신은 없고, 트레킹 전문 여행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산악 가이드 자격이 있는 인솔자와 함께 해 만족스러운 트레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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