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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otrekker Jan 06. 2016

영속과 순간의 공존, 돌로미테를 걷다

돌로미테 트레킹 3일


[트레킹 3일: 6시간]

피아자 산장 → 롱암 산장(점심) → 비엘라 고개 → 세네스 산장


오늘은, 밝은 햇빛에 붉은 기운을 감춘 크로다 로사의 북사면을 타고 서쪽으로 간다. 크로다 로사 산군의 속살을 볼 테고, 바람이 거세다는 비엘라Biella 고개를 넘을 예정이다. 트레킹 3일째, 이보다 날씨가 좋을 수는 없다.


밝은 햇빛에 붉은 기운을 감춘 크로다 로사. 해발 3,146m


자꾸 뒤돌아보게 만드는 프라토 피아자. 해발 2,000m


화원 광장이라는 뜻의 프라토 피아자



하룻밤 머물렀던 피아자 산장(좌)과 크로다 로사 호텔(우)을 내려다 본다.


프라토 피아자 너머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의 실루엣이 보인다.


크리스탈로. 이름 참 잘 지었다.


피아자 산장을 뒤로 하고 크로다 로사를 향한다. 일행은 저만치 가는데 자꾸 뒤를 돌아 본다. 다시 못 볼 거란 아쉬움일까, 다녀갔다는 흔적 하나 남기지 못하고 떠나는 미련 때문일까.


붉은 장벽, 크로다 로사의 품으로 들어선다.


눈이 채 녹지 않은 크로다 로사


첫날 구름에 가렸던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가 선명하다.


멀리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를 나누는 산들이 보인다.


마치 지평선에 뜬 보름달처럼, 오스트리아 설산은 우리 일행을 계속 따라왔다.


그닥 정확하진 않지만, Peak.ar 앱은 설산이 오스트리아에 있음을 알려준다.


크로다 로사의 허리에 오르니 파노라마 전망이 펼쳐진다. 프라토 피아자 너머 트레킹 첫날 구름에 가렸던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가 선명하다. 북쪽으로는 저 멀리 오스트리아의 설산까지 보인다. 어제 가이드의 예고처럼 실로 장관이다. 일행은 잠시 쉬다가, 눈이 채 녹지 않은 크로다 로사를 옆으로 두고 북사면으로 난 좁은 트레일을 따른다. 오스트리아 설산은 마치 지평선에 뜬 보름달처럼 우리 일행을 계속 따라온다.



동알프스는 골산이다. 어제까지 걸었던 길은 나름 흙길이었는데, 오늘부터는 제대로다. 가끔 위험 구간에서는 등산화에 차이는 자갈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몽블랑 트레킹을 다녀왔다는 일행 중 한 분은 TMBTour du Mont Blanc는 제법 걸어도 돌산이 아니어서 괜찮았는데, 돌로미테는 돌산이라 힘들단다. 해외 트레킹을 왔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나로서는 육산, 돌산 가릴 게 없다. 그저 쾌청한 날씨에 이곳을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롱암 산장


롱암 산장. 우리 일행은 그늘을 찾는데 이들은 땡볕에서도 잘 앉아 있더라.


3시간 30분 정도 걸어 롱암Rossalm 산장(지도에는 카발로 산장Malga Cavallo이라 표기되어 있다)에 도착한다. 소나 말을 방목하며 머무는 집 같은데, 최근에 새로 지은 데다가 트레커들을 위한 식당도 마련되어 있다. 트레킹 중 산장에서 먹는 음식은 죄다 짠 편인데, 그래서인지 느끼하지 않고 계속 먹을 수 있는 것도 같다. 맑은 볕에 앉아 크로다 로사를 병풍 삼아 먹는 점심은 잊지 못하리라.


크로다 로사와 크로다 델 베코가 만나는 비엘라 고개를 넘는다. 폐허가 된 고대 유적지를 방문한 듯하다.


이곳에서 여러 트레일이 만난다.


그란 데 포세스 호수가 보이는 비엘라 고개에서.


하나의 거대한 암석이자 습곡 덩어리인 크로다 델 베코


바람이 거세다는 비엘라 고개에 오르자 절로 탄성이 나온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땅만 보고 걸어야 한다는 비엘라 고개에서 돌로미테의 진면목을 만난 게다.


하나의 거대한 암벽이자 습곡 덩어리 크로다 델 베코Croda Del Beco, 해발 2,605m의 기이한 형상과 아우라는 지구의 지난한 시간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이 순간 돌로미테의 시간을 멈춰 세운 듯하다. 낯선 공간에 서있는 나란 존재의 어색함이 더해지면서, 시간 개념은 온데간데 없다. 영속과 순간의 공존을 실감한다.


굴곡진 초록 융탄자 위로 짙은 그란 데 포세스 호수L. Gran de Fòses가 심심함을 덜어주고, 양옆으로는 거대 암벽이 버티고 서있고 멀리 설산이 원근감을 더한다. 예상치 못한 풍광에 일행은 이곳에서 30분을 머물며 돌로미테를 만끽했다.


비엘라 산장은 거대한 습곡 덩어리 아래 덩그러니 있다.


비엘라 산장에서 바라본 풍광


시간이 멈춘 듯한 풍광. 사진 가운데 잠시 쉬었던 비엘라 산장이 자리하고 있다.


비엘라 고개를 넘으니 크로다 델 베코 아래 비엘라 산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고개에서 여유를 부린 일행은 이곳 산장에서 잠깐 쉬고 오늘의 목적지인 세네스 산장Rifugio Sennes으로 향한다. 비엘라 산장에서 바로보는 풍광은 오전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



30분, 1시간 걸었을까.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풍광을 걷다 보니 어느새 하룻밤을 묵을 세네스 산장이다. 산장은 무척 깨끗한 편이며 식사도 훌륭하다. 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도 일품이다. 트레킹 마지막 날은 하산길이라 치면, 벌써 트레킹이 끝나간다. 트레킹도 사진도 다 배낭에 넣어두고 이곳 세네스 산장에서 한 일주일 머물고 싶다.


가이드와는 트레킹 내내 한 방을 사용했다. 트레킹을 끝내고 방에 들어와 무릎에 덕지덕지 붙힌 테이프를 떼는 가이드가 짠하면서도 지구 곳곳을 걸을 수 있다는 게 내심 부럽다.


저녁 하늘이 선홍색으로 물드는 걸 보면 내일도 날씨는 맑을 듯하다. 하루의 마무리는 저녁 식사와 와인, 그리고 일행과 함께 나누는 대화다. 산에서 걸을 때 모습은 다들 비슷하지만, 사람마다 감출 수 없는 결이란 게 있나 보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 온 트레킹이지만, 알 수 없는 빚을 진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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