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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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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otrekker May 04. 2017

뜻밖의 철쭉

호암산 5월


느지막하게 일어나 산에 오를 준비를 합니다. 카메라, 헤드렌턴, 얇은 바람막이를 챙깁니다. 한 시간 남짓 오르는 산행에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갑작스러운 더위, 5517번 버스 안 머리 위로 강하게 쏟아지는 에어컨 바람이 불편합니다. 그나마 바람이 약한 곳을 찾아 앉습니다. 버스는 도림천을 지나 삼성산 성지를 거쳐 호압사 입구에 도착합니다.


여느 때와 다르게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호압사는 행사가 끝났는지 무대를 치우느라 소란스럽습니다. 그 와중에도 6시가 되니 타종을 시작합니다. 종소리를 듣다가 다시 호암산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호압사에서 저만의 공간까지 30분이면 족합니다. 낮에는 뭇사람들의 공간이겠지만 해질녘 이 시간엔 저만의 공간입니다. 가끔 인기척을 내며 지나는 사람도 있긴 한데, 번잡한 서울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앉아 있기에 그만한 곳은 없습니다.


소중히 간직하고픈 추억이 여전한 곳, 그곳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서쪽 바다로 해가 내려간 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어느새 8시가 다 되었습니다. 호압사로 내려와 아홉 번 절합니다. 처음으로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 어떤 기복도 없이 무념무상으로 아홉 번 절했던 과거와 달리, 아홉 번 절하는데 땀이 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토록 바라면 이뤄질까, 염치도 없이 간절히 빌었습니다.


오늘 호암산에 오르면서 뜻밖의 철쭉을 만났습니다. 그래, 5월이었지. 산에서 보는 철쭉은 곱습니다. 도심 거리에 조성된 색 짙은 꽃과는 달리 옅고 부드러워 오래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늦은 오후 역광을 받은 꽃잎은 투명하여 고급스럽기까지 합니다. 오르는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찍었습니다.


철쭉은 언제나 그때 그곳에 있을 텐데, 그 존재를 저는 미처 몰랐습니다.








날이 좋으면 서해가 붉어지는 해넘이를 볼 수 있다.


어둠이 내린 하산길, 불 밝힌 호압사는 등대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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