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랩소디 - 파트 1

단편소설

by 물개사랑

책방의 문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손잡이를 당기는 순간 종이 한 번 울리고, 바깥의 소음이 문틈에서 얇게 잘려 나갔다. 바닥은 오래된 마루처럼 삐걱거릴 것 같았지만, 의외로 바닥재가 새로 깔려 있었는지 발걸음이 조용했다. 오후의 햇빛이 나무 선반 사이로 길게 누워 있었고, 먼지는 그 빛을 타고 천천히 내려왔다. 향초 같은 냄새와 커피 향이 어울려 공기를 덜컥 말았고, 귀에 닿는 음악은 볼륨을 잘못 맞춘 것인지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는 곧장 독서 모임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이름을 적고, 구석의 의자 하나를 골랐다. 의자는 등받이가 낮고 앉으면 골반이 약간 뒤로 미끄러지도록 경사진 형태였다. 책방 주인이 직접 만든 것이라며 진행자가 웃으며 소개했는데, 앉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등 아래쪽으로 받쳐주는 느낌이 묘하게 나를 안심하게 하였다. 문제는, 안심하는 순간 몸이 제멋대로 풀린다는 점이었다.


독서 모임의 제목은 ‘침묵의 미학’이었다. 조용히 각자 읽고, 돌아가며 한 문장을 낭독하고, 짧은 생각을 나누는 방식이라고 했다. 모두 열 명 남짓. 앞줄엔 모직 재킷을 입은 남자가 펜을 쥔 손으로 페이지를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창가엔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여자가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아 있었다. 가운데 책상에 작은 생수병 몇 개와 캐러멜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나는 캐러멜을 하나 집어 입에 넣고 씹다가, 충치 치료 보철물이 빠지지 않게 치아 사이에 달라붙는 점성을 천천히 풀어냈다.

문이 다시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바람이 짧게 스쳐가고, 종이 다시 울렸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시선을 내리는 쪽이 마음이 편했다. 종이가 말리는 소리, 의자 다리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 텀블러가 테이블에 닿으며 만드는 둔탁한 소리. 그 소리들이 서로 겹치다가, 진행자가 방문을 닫는 순간 곧장 가라앉았다. 방음이 잘되어 책방 매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시작할까요? 오늘은 각자 가져온 책에서 한 문장씩만 해 볼까요?”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손등에 잔털이 빛을 받았다. 손가락 관절마다 약간의 각진 윤곽. 종이를 뒤집을 때, 손톱이 미세하게 표지를 긁었다. 나는 가방에서 얇은 책을 꺼냈다. 새벽에 집 근처 편의점에서 두유 두 병과 달걀을 샀던 기억이, 방금 전까지는 아무 의미 없었는데, 갑자기 잔향처럼 떠올랐다. 두유의 부드러운 달콤함, 달걀 껍데기가 손끝에서 바스러지던 느낌, 노른자에 소금을 살짝 찍어 먹을 때 올라오던 묵직한 풍미. 그 모든 게 이제는 복부의 아래쪽에서 다른 형태로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나는 허리를 조금 더 등받이에 기대고, 배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 아래의 복부는 따뜻했고, 옷감이 피부에 가볍게 붙었다 떨어졌다. 아랫배 어디선가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작은 거품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터지는 느낌. 거품 사이로 아주 미세하지만 날카로운 신호가 섞여 들었다. 손톱으로 표지를 긁는 것처럼.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진행자가 먼저 한 줄을 읽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침묵을 하나씩 들고 다닌다.”

말의 끝이 떨어지자, 방 안의 공기가 더 조용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옆자리 남자가 펜 밑을 왼손으로 잡고 윗부분을 오른손으로 잡고 돌려 색을 검정에서 빨강으로 변경하였다. 그 작고 둔탁한 소리마저 큰 사건처럼 부풀었다. 내 몸 안에서, 다른 종류의 소리도 부풀고 있었다.

신호는 부드러웠다. 앉은 자세를 잘 잡으면 그대로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엉덩이 한쪽으로 무게를 살짝 실어 봤다. 의자가 가볍게 기울었다. 바지가 의자와 마찰하면서 얇은 섬유 소리가 났다. 그 변화에 복부가 빠르게 반응했다. 피부 안쪽에서 얇은 막이 팽팽해지다가, 가볍게 꺼지는 느낌.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가 아주 천천히 내쉬었다. 입천장에 남아 있던 캐러멜의 단맛이 희미해졌다.

두 번째 신호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낭독이 둥글게 이어지는 사이, 파동 에너지가 꾸준히 쌓이다가 갑자기 큰 힘으로 빡-하고 때리려고 했다. 배가 아래로 당겨졌다가 위로 튕겨 오르는 느낌. 근육이 알아서 반응하며 수축했다. 나는 허벅지 안쪽에 힘을 넣었다. 허벅지와 의자 사이의 마찰이 열을 냈다. 숨이 위로 올라오고, 어깨가 저절로 굳었다. 입술을 다물자 침이 혀 밑에 고였다.


앞줄의 여자가 차례를 받아 들고 말했다.

“같은 침묵이 두 번 오는 일은 없다.”

문장이 내 귀를 스치며 들어왔고, 동시에 내 몸 안쪽의 어떤 문도 두드렸다. 나는 고개를 아주 천천히 숙였다. 책의 종이 냄새가 진해지고 활자의 윤곽이 가까워졌다. 종이의 한 섬유가 손끝에 닿았다. 그 촉감은 얇고 마른데 폭신했다. 복부의 깊은 곳에서 꿀렁, 하는 무게가 한 번 굴렀다.

‘지금은 안 돼.’

나는 내 몸에게 말하고 있었다. 말은 공기 없이도 안쪽으로 전달되었다. 배에 올린 손바닥에 힘을 빼고, 등받이에서 허리를 조금 뗐다. 척추의 각도를 바꾸자, 장기들의 위치가 아주 미세하게 재배치되는 느낌이 있었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 창밖에서 구름이 슬며시 움직이고 있었다. 바깥의 구름은 상관없이 부드럽게 흘렀다.


누군가 내 차례를 지목했다. 나는 준비한 문장을 읽었다. 한 줄. 소리의 높낮이를 다듬고, 끝을 너무 길게 끌지 않도록 조심했다. 문장이 끝나자 내 안의 압력도 잠깐 풀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책을 덮었다. 종이가 닫히며 작은 바람이 났다.


진행자가 손을 들었다.

“혹시 추우시면 에어컨을 끌까요?”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자가 에어컨을 끄러 일어서자 의자가 바닥과 스치며 부드럽게 소리를 냈다. 잠시 후 에어컨의 낮은 바람 소리가 꺼졌다. 바람이 멎는 순간, 방 안의 소리들이 다른 방식으로 또렷해졌다. 누군가의 작은 헛기침이 벽을 타고 튕겨 나왔다.

파동이 또 도착했다.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곧장 치고 올라왔다. 복부의 한 점에 압력이 모였다가 길게 찢어지는 듯한 통증. 허리가 저절로 앞으로 말렸다. 나는 허벅지 근육과 복근 사이에 일종의 다리를 놓듯 힘을 주었다. 다리가 떨렸다. 텀블러를 든 손이 덜컥 떨렸다. 물 표면에 작은 파문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텀블러를 입술에 대고 아주 얇게 한 모금만 넘겼다. 식도와 위 사이에 시원한 물의 온도가 지나갔다. 그 시원함이 잠깐 위안을 줬다. 하지만 아래쪽의 시간은 별개였다. 시곗바늘이 다르게 움직이는 곳이었다.

진행자가 말했다.

“이제 각자 떠오르는 문장으로 마무리해요.”

한 사람씩, 짧게.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압력의 간격이 좁아졌다. 파동 사이의 숨이 짧아졌다. 나는 허리를 더 세웠다가, 엉덩이를 조금 더 앞으로 빼고, 허리를 또 눕혔다. 의자가 덜컹이며 약간 움직였다. 옆자리 남자가 나를 슬쩍 한 번 보았다가 시선을 내렸다. 그의 물방울 무늬 넥타이가 햇빛을 받아 조금 반짝였다.


앞줄의 남자가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 방 안은 거의 완벽한 정적이었다. 그 정적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때, 아주 작고, 아주 얇은 소리가 공기에서 분리되었다. 그것은 내가 나도 모르게 만든 소리였다. 종이를 가위로 살짝 스치는 정도. 그러나 나에게는 내 안쪽에서 금이 가는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나는 숨을 멈췄다. 아무런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누군가 책장을 넘겼다. 내겐 구원의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에 맞춰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빨라졌다. 피부에 땀이 났다. 쇄골 아래에 얇게 맺힌 땀이 천천히 흘렀다. 셔츠가 피부에 붙었다 떨어졌다. 소매 끝이 손목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마지막으로”라고 하면서 진행자의 손짓이 나를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잠깐 모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입을 열었다. 혀끝이 입천장에 붙었다 떨어졌다. 발음이 나왔다. 문장은 짧았고, 목소리는 낮았다. 그 낮음이 떨지 않게 호흡을 조절했다. 문장의 끝을 닫는 순간, 아래에서 또 다른 문장이 시작되려 했다. 그것은 내가 고른 문장이 아니었다.

의자에 앉은 자세로, 허리를 안 보일 정도로 살짝 들었다. 엉덩이 한쪽에 체중을 실었다가 반대로 옮겼다. 등받이가 가볍게 삐걱하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가늘게 이어지는 동안, 나는 나의 다른 소리를 나와 의자 사이의 빈틈으로 흘려보내려 했다. 소리는 살을 타고 이동했고, 옷감을 뚫고 의자로 번졌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뿌우우우웅~.

실패했다…….

정적 속 천둥 같은 소리에 모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