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교차로 - 파트 2

단편소설

by 물개사랑

“저기 보여? 저기 저 둥그런… 그거 우리가 지나가야 하는 데야.”

“아, 저거? 그냥 차 돌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여자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거… 말이 쉽지…….”

그리고 내 시야에 거대한 회전 사슬처럼 차들이 줄지어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때부터 내 가슴속에서는 이미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냥 둥근 분수대 비슷해 보였던 그것이, 가까이 갈수록 마치 태풍의 눈처럼 거대한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회전교차로는 그저 ‘돌아 나가면 된다’고 들었던 단순한 구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하필이면 흔하지 않은 다차로 회전교차로였다. 차들은 쉼 없이 돌고 있었고, 각자 빠져나가거나 들어가는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반면 나는, 그냥… 몰랐다. 운전면허 실기 시험에 회전교차로가 없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야, 여기야. 이제 슬슬 속도 줄이고 진입 타이밍 봐야 해.”

“응…, 보고 있어…….”

“저기 SUV 지나가고, 그다음 검은색 차 지나가면 들어가면 돼.”

“저기…, 너무 빠른데?”

“아니야, 할 수 있어! 자신감을 가져!”

여자친구의 말은 격려였지만, 지금 내 귀에는 거의 ‘뛰어! 아니면 밟혀!’로 들렸다. SUV는 엄청난 속도로 교차로를 휘돌았고, 그 뒤에 오던 검정 차는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나를 ‘네가 들어오면 가만 안 둔다’는 듯한 기세로 쏘아보고 있었다.

나는 핸들 위에서 손가락을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나…, 못 들어갈 것 같아…….”

“아니야, 들어가야 돼. 지금 안 가면 끝도 없이 기다려야 해!”

“그게… 지금이 아니야…….”

“지금이야!”

“지금 아니라고!!”

차들은 여전히 요동치는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고, 나는 타이밍을 잡기 위해 억지로 허리를 세웠다. 하지만, 몸을 세운다고 운전 실력이 세워지는 건 아니다. 내 시야에는 차들이 마치 놀이공원 회전목마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데, 문제는 그 회전목마가 시속 40으로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여자친구는 답답함에 시트벨트를 잡고 있었다.

“봐봐! 저기 텅 비었잖아! 지금 들어가면 돼!”

“저게 텅 비었다고? 어디가!? 난 아무것도 안 보여!!”

“저기! 저기! 저기라고!!!”

“소리 지르지 마!! 집중 안 돼!!!”

이 작은 말싸움은 수 초 안에 벌어진 것이었지만, 내겐 10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SUV와 검은색 차 사이에서 아주 잠깐, 정말 그 찰나의 순간만큼 공간이 비었다. 나는 숨을 멈추며 액셀을 톡 밟았다. 차가 앞으로 쑥 들어가며 회전교차로의 원 속에 진입한 순간, 내 심장은 거의 엔진보다 큰 소리로 뛰고 있었다.

여자친구가 환하게 외쳤다.

“됐다!! 들어왔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응… 근데… 이제 어떻게 나가…?”

여자친구는 나를 바라보더니 얼굴이 잠깐 굳었다.

“…어? 그러고 보니……”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회전교차로 바깥의 수많은 출구들을 훑었지만, 그곳에는 끊임없이 차가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이미 중심부에 갇힌 돌멩이처럼 속수무책으로 원을 따라 도는 중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처음 회전교차로에 진입했을 때만 해도 ‘아, 그래도 들어오긴 했네’ 하고 안도했다. 하지만 그 안도는 3초도 가지 않았다. 도로는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고, 차들은 서로 “내가 먼저!”라는 기세로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이미 속도가 적당히 유지된 상태에서 혼자만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중이었다.

“저기! 저쪽 방향에서 나가야 돼! 지금 빠져나가!”

“지금!?”

“응 지금!”

“지금은 아니야!!! 너무 늦었어!!!”

“아… 진짜… 그러니까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지…….”

이 문장은 분명 조언이지만, 초보 운전자에게는 거의 저승사자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나는 다시 핸들을 꽉 잡고 회전하는 차선을 따라갔다. 차 안의 공기는 싸움 직전의 묘한 뜨거움이 감돌고 있었다. 여자친구는 시트에 몸을 기대지 않은 채 앞으로 살짝 쏠려 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자기야, 이번엔 6시 방향이야. 6시에서 나가자.”

“6시가… 어디야…?”

“바로 뒤쪽!”

“뒤쪽을 어떻게 나가!!!”

“아니 그러니까 돌다 보면…….”

“난 지금 계속 돌고 있잖아!!! 그래서 지금 몇 시인지도 모르겠어!!!”

여자친구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시계를 그리며 방향을 알려주려 했고, 나는 그 손가락을 보며 더 혼란스러워졌다. 차는 이미 두 번째 바퀴를 돌고 있었고, 나는 첫 번째 바퀴를 어떻게 돌았는지도 기억이 없었다. 마치 현실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뒤차가 빵- 하고 경적을 울리자 나는 너무 놀라 핸들을 살짝 틀어 안쪽 차선으로 들어갔고, 여자친구는 소스라치며 소리쳤다.

“자기야!!! 갑자기 돌리면 어떡해!!!”

“나도 놀랐어!!! 뒤에서 빵 했잖아!!”

“그러니까 침착해야지!! 와 진짜… 나 지금 심장 튀어나오는 줄…….”

나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심장이 매 순간 엔진 회전수와 같은 속도로 뛰고 있었다. 세 번째 바퀴를 돌 때쯤, 나는 도로 위 신호보다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더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그녀는 옆자리에서 경보 시스템처럼 울렸다.

“지금 나가면 돼! 지금, 지금, 지금!!!”

“안 되겠어!!! 차 오잖아!!!”

“그 차 멀리 있어!”

“멀리? 그 차는 지금 우리한테 총알처럼 오는데!?”

여자친구는 답답함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저 정도면 우리랑 거의 같은 속도 아니야? 뻥이 너무 심해!”

“과장이 아니야!!! 난 지금 살아 나가기 위해 노력 중이야!!!”

차는 어느새 네 바퀴째 돌고 있었다. 밖에서 보면 평온하게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차 내부는 이미 작은 전쟁터였다. 나는 끊임없이 방향을 잃고 있었고, 여자친구는 방향을 찾아주는 대신 나를 길 잃은 강아지 보듯이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빠져나가지 못한 채 또 한 바퀴를 더 돌기 시작했다.

지옥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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