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교차로 - 파트 3

단편소설

by 물개사랑

열 다섯 바퀴째부터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이상해졌다. 교차로를 돌며 보는 풍경은 계속 같은데, 그 풍경 안에서 나와 여자친구만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바깥 풍경은 질서 있게 움직였지만 차 안은 이미 생중계 중인 예능 프로그램이나 다름없었다. 제목을 붙이자면 ‘초보 운전자 생존기’.

“자기야!! 이번엔 진짜야! 저기 흰색 차 지나가고 그 뒤에 공간! 보이지!? 거기 들어가면 돼!”

“안 보여!! 나 지금 아무것도 안 보여!! 그냥 도는 것밖에 안 보여!!”

“앞을 봐야 보이지!!!”

“앞을 보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안 보여!!!”

여자친구는 머리를 감싸 쥐고 몸을 비틀었다. 나는 그 옆에서 계속 눈을 부릅뜨고 출구만 찾았다. 그런데 문제는, 출구가 보이긴 보이지만 그 출구로 빠져나갈 용기가 전혀 생기는 않는 것이었다. 차들이 빠르게 씽- 하고 지나가는 걸 보며 ‘저 사이로 뛰어들면 안 부딪칠 수 있을까?’ 하는 판단을 0.1초마다 해야 했다.

어느 순간 뒤차가 우리에게 빵빵거렸다. 그리고 옆으로 나란히 달렸다. 그러자 여자친구는 창문을 향해 중얼거렸다.

“아 진짜……, 초보 스티커 좀 봐주면 안 되나……, 예의가 없어 예의가…….”

나는 급하게 말했다.

“창문 열 생각하지 마!! 나 지금 그것까지 신경 못 써!!”

“열 생각 없는데? 그냥 말한 거야! 근데 진짜 못 봐주네. 초보한테 왜 그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여자친구는 호흡을 고르고 다시 앞을 가리켰다.

“저기! 저 출구야! 계속 같은 출구였잖아! 자, 이번엔 준비해! 지금…, 아…, 놓쳤네. 다음! 다음! 아…, 어지러워!!”

“나도 그래!!! 지금 우리가 몇 바퀴째인 지도 모르겠어!!!”

“열일곱 바퀴째야! 내가 세고 있었어!!”

나는 그녀를 흘끗 쳐다봤다.

“세고 있었다고? 대단한데?”

“대단한 게 아니고……, 그냥 계속 돌고 있으니까 알지!!!”

차 밖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운전하며 들어왔다 나가는데, 우리 둘만 회전교차로의 물리 법칙을 뚫고 들어온 것처럼 이상한 차가 되어 있었다. 여자친구의 이마에도 어느새 땀이 맺혔고, 내 손바닥은 축축하게 된 지 오래다. 차 내부는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열기로 가득했다.

여자친구는 또다시 외쳤다.

“지금 나가!! 지금!!”

“안 돼!!! 저기 차 온다고!!!”

“차 멀리 있어!!”

“그게 아니라, 진짜 빨리 오고 있어!!!”

“아 진짜……, 자기 머릿속에서는 다들 F1 드라이버로 보여?”

“난 초보라서 다 빨라 보여!!!”

여자친구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자기야……, 우리 지금 10분째야.”

“10분?”

“응. 10분째 도는 중이야. 나 이제 회전교차로만 보면 트라우마 올 것 같아…….”

나는 말문이 탁 막혔다. 10분? 그대로 두면 한 시간도 금방 올 것 같았다. 그 사실을 깨닫자 갑자기 한심함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자괴감이 동시에 올라왔다. 차는 또 회전하며 원을 그렸다. 시간이 늘어져 버리니 내 감정도 원심력에 밀려 더 심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결국, 여자친구가 폭발했다.

“아 제발!! 나가면 되잖아!!! 왜 못 나가!!!”

“나가고 싶은데 차가 오잖아!!!!”

“그럼 평생 돌 거야!?!?!?”

“그건 아니지!!!! 근데 지금은 아니라고!!!!!”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바퀴를 돌았다. 이제 완전히 카오스였다. 회전교차로를 돌기 시작한 지 어느새 20분이 가까워졌다. 아니, 느낌 상으로는 족히 2시간이 넘은 것 같았다. 자동차 엔진 소리는 일정하게 윙- 하고 울리고 있었지만, 우리 둘의 신경은 그 엔진보다 훨씬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바깥의 가을 단풍은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차 안의 우리는 이미 떨어질 듯 말 듯한 붉은 단풍잎처럼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기야……, 나 진짜 어지러워……. 지금 몇 바퀴째더라……?”

“서른 바퀴째…….”

“진짜?”

“응. 서른 바퀴야. 내가 세고 있어…….”

“그걸 왜 계속 세고 있어!!!”

“세지 말라고 한 적 없잖아!!! 근데 세니까 더 슬퍼졌어!!!”

여자친구의 목소리에는 이미 반쯤 헛웃음이 섞여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땀을 닦으며 계속 출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노려본다고 실력이 올라가는 게 아니다. 출구 안쪽 회전교차로에 가득 차 있는 차들이 줄지어 지나가는 모습은 여전히 무시무시했고, 그 사이에 낄 자신은 조금도 없었다.

“저 출구! 저거야!! 이번엔 틀림없어!!”

“안 돼!! 지금 트럭 온다!!”

“멀어!!”

“가깝다고!!!”

여자친구는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지금 안 나가면 자기가 한 바퀴 더 돌겠지!?”

“응?”

“그럼 나 또 세야겠지!?”

“잠깐만, 세고 싶은 게 아니었어!?”

“세기 싫으니까!!! 지금!!! 나가!!!”

그 순간, 뒤에서 차가 또 빵- 하고 경적을 울렸다. 이번엔 긴 경적이었다. 마치 “너네 아직도 돌고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비웃음이 느껴졌다. 나는 심쿵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왜 빵빵거리는 건데!! 초보 스티커 안 보여?!”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돌고 있으니까 짜증 날 수도 있지!!!”

“우리가 계속 돌아서 피해 줬어? 빵빵은 너무하잖아!!”

“빵빵하지 말라고 말할 수가 없잖아!!! 나 지금 운전 중이라고!!!”

여자친구는 얼굴을 두 손으로 덮었다.

“아……, 진짜……, 이렇게 돌다가 우리 헤어지는 거 아니냐……?”

“무슨 소리야! 그건 너무 극단적이잖아!!!”

“아니……, 지금 내 상태가 그래……, 계속 돌고 있으니까, 돌아버릴 것 같아. 멀미 나고 토할 것 같고……, 감정이, 휘말리고 있어…….”

“나도 휘말리고 있어!!! 출구 찾다 휘말리고 있어!!!”

둘 다 중력에 잡아 끌린 것처럼, 또한 원심력에 튕겨 나갈 것처럼 감정이 계속 급변하고 있었다. 말 한마디마다 싸움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멀어지고, 또다시 가까워졌다가 폭발 직전에서 멈췄다. 회전 속도는 일정한데, 우리 관계는 그보다 훨씬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여자친구는 갑자기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기, 저 흰색 SUV……, 방금 들어 들어온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 벌써 저 멀리 나갔네…….”

“응…….”

“그럼 우리는……, 뭐야? 교차로 죽돌이야?”

“아니야!!! 나가고 있어!!! 나가려고 하는 중이라고!!! 지금도 출구 보고 있다고!!!”

여자친구는 턱을 괴고 나를 지켜보았다.

“근데 왜 자기는 출구만 보고 있지? 나가는 건 언제 해?”

“보고 나가려고 하는 거야!!!”

“멍충이!”

“뭐라고! 나간다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이 대치 상태는 이미 ‘커플의 멘탈 붕괴 쇼’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절정은 아직 오지 않았다. 차는 어느새 마흔 바퀴째에 들어섰고, 내 정신은 이미 반쯤 다른 차원으로 날아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갑자기 옆 차선 차 간격이 벌어지는 게 보였다. 찰나였지만 확실한 틈이었다. 여자친구는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외쳤다.

“지금이야, 이번엔 진짜야!, 가, 가, 가!!!”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액셀을 밟으며 차선을 변경했다.

그리고 차는……,

드디어 회전교차로를 빠져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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