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탈출의 순간, 나는 거의 눈물이 날 뻔했다. 여자친구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회전교차로를 벗어난 순간, 나는 전신의 힘이 싹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거대한 파도를 헤치고 나온 생존자가 된 기분이었다. 차는 똑바로 나왔고, 속도도 적당히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나는 짧은 숨을 몰아쉬며 운전대를 살짝 풀어 잡았다. 여자친구도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 침묵은 분명 안도의 침묵이었다.
“나왔어…….”
“응……, 나왔네…….”
“우리……, 나왔어…….”
“응……, 대단하다……, 진짜…….”
짧지만 묵직한 감동이 차 안에 맴돌았다. 수십 분 동안 돌다가 빠져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마치 인생의 중요한 관문을 통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여자친구는 폭풍을 지나온 생존자처럼 시트에 몸을 붙이고 깊은 숨을 쉬었다.
“아……, 진짜, 나, 다시는 거기 들어가고 싶지 않아.”
“나도. 나 이제 평생 우회도로만 탈 거야.”
둘의 감정이 잠시 평화롭게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고, 나는 그 여유 속에서 천천히 다음 길을 따라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내비게이션이 너무나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갈림길에서 좌회전 또는 우회전하세요.”
여자친구는 눈을 찡그렸다.
“뭐라고?”
“좌회전, 또는 우회전하래…….”
“둘 중 하나를 하라는 거잖아?”
“그렇겠지?”
사실 이 길은 갈라졌다 합쳐지기 때문에 아무 방향이나 상관이 없었는데, 거지 같은 내비게이션이 오작동을 했는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그땐 몰랐기에 갈림길이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또다시 조여왔다. 갈림길에서 양쪽으로 가는 차들이 빠르게 이동 중이었다. 여자친구가 말했다.
“자기야, 좌회전해야 할 것 같아.”
나는 즉각 반응했다.
“그치? 나도 좌회전이 맞는 것 같았어.”
여자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른쪽으로 가야 좌회전할 수 있어.”
“뭐라고?”
“바로 왼쪽으로 꺾는 게 아니고, 오른쪽 차선으로 갔다가 크게 좌회전 들어가야 한다고!”
나는 갈림길을 뚫어져라 보았다.
“근데 이미 오른쪽 차선에 차가 많아!! 못 들어가!!”
“그러니까 지금 천천히 들어가면 되잖아!!”
“지금은 아니야!!!”
“또 그 말이야!?”
도로 위 상황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앞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차들이 줄 지어 있었고, 왼쪽으로 가는 차들도 바짝 붙어서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정신이 휘청하며 소리쳤다.
“잠깐만!!! 나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어!!!”
“우회전!! 아니 좌회전!! 아니, 으아 잠깐만!!”
“잠깐! 지금 결정해야 한다고!! 지금!!!”
“그럼, 왼쪽!!! 아니 오른쪽!!! 아 나도 헷갈려!!!!!!”
갈림길이 코앞이었다. 나는 핸들을 양손으로 꽉 움켜잡고 속도도 못 줄이고 있었다. 여자친구는 허둥지둥 손으로 공기를 가르며 말했다.
“이쪽!! 아니 저쪽!!! 이쪽이야!!! 아니 저쪽!!!”
“어디라고!!!!!!!!!!”
그리고 결국, 우리는 갈림길 한복판에서 멈춰버렸다.
진짜로, 말 그대로, 정중앙.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완벽한 정가운데. 바퀴 네 개가 방향을 잃은 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바로 뒤차가 빵빵 거리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는 나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속삭였다.
“자기야……, 우리 지금 길 한복판에서 멈췄어.”
“알아…, 나도 알고 있어…….”
“왜 멈췄어?”
“몰라!!! 그냥… 몸이 멈췄어!!! 두뇌도 멈췄고!!!”
여자친구는 이마를 짚었다.
“아… 진짜… 이럴 거면 회전교차로에서 사는 게 나았겠다…….”
나는 외쳤다.
“말도 안되는 소리!!!”
길 위에서 또 싸움이 시작될 기세였다. 갈림길 한복판에서 멈춰 선 순간, 주변의 모든 소리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뒤차들의 경적 소리, 옆 차선에서 누군가 창문을 내리며 뭐라고 외치는 소리, 내비게이션이 여전히 “좌회전 또는 우회전하세요”를 반복하는 소리까지. 도로 위 모든 소음이 동시에 나를 눌러오는 듯했다. 나는 땀으로 흥건한 손으로 핸들을 꼭 쥔 채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야!! 지금 멈춰 있으면 안 돼!!!”
“알아… 알아… 근데… 몸이 말을 안 들어…….”
“왜 말을 안 들어!! 지금 차들 다 우리 때문에 난리잖아!!”
“그러니까 더 못 움직이겠어!!!”
여자친구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 진짜… 회전교차로는 그래도 돌기라도 했지… 지금은 움직이질 않잖아…….”
“움직이고 싶은데!!! 움직일 방향이 없어!!!”
“좌회전해!!”
“좌회전? 이 각도에서!? 나 지금 정중앙인데!!”
“그럼 우회전!!”
“우회전하면 또 반대쪽이잖아!!!”
“근데 좌회전도 아니고 우회전도 아니면 뭘 하라는 거야!!!”
“몰라!!! 나도!!!”
“그럼 어떻게 하라고!!!!!!!!!!!”
우리는 서로를 보며 거의 동시에 소리쳤다.
뒤차는 또 크게 빵— 하고 울렸다. 이번에는 분명 짜증과 분노가 섞인 빵이었다. 멀리서 누가 창문을 열고 “거기서 정차하면 어떡하냐고요—!”라고 외쳤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이 얼어붙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여자친구는 갑자기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기야……, 지금 이 상황을 솔직히 말해 너무 스트레스받아.”
“나도……. 혹시 나 지금 울고 있어?”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뭔가를 해야 돼!”
“뭔가…?”
“그래! 둘 중 하나를 택하면 돼! 좌회전이든 우회전이든!”
나는 갈림길을 바라보았다. 왼쪽은 차가 줄지어 빨리 달리고 있었고, 오른쪽은 트럭들이 연달아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쪽도 쉬워 보이지 않았다. 운전면허 1주 차인 나에게는 둘 다 ‘죽을 수도 있는 길’처럼 보였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야……, 나 진짜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해?”
여자친구는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그걸 지금 왜 나한테 물어봐!!!!!!!”
“아니, 출발할 땐 자기가 다 알려준다고 했잖아!”
둘의 목소리가 차 안에서 반사되며 더 크게 울렸다. 어쩌면 조금만 더 싸우면 창문의 진동으로 차 문이 열릴 것 같았다. 경적 소리는 계속 이어졌고, 나는 점점 더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차도, 사람들도, 여자친구도, 상황도 모두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소리쳤다.
“나 그냥 여기서 살래!!!!!! 여기가 집이다!!!!!!”
여자친구도 지지 않았다.
“그래!!! 나도 여기서 텐트 치고 살래!!!!! 회전교차로보단 낫지!!!!!”
둘은 완전히 감정이 폭발한 채 서로를 노려봤다. 하지만 5초쯤 지나자 우리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같잖은 갈림길에서 정차한 우리 모습이 갑자기 너무 우스워 보였다. 여자친구가 작게 말했다.
“우리 진짜 왜 이러고 있는 거야?”
“글쎄……, 나도 모르겠어.”
둘은 동시에 피식 웃었다. 그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린 웃음이 터졌고, 그 웃음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우리는 그 상황이 너무 웃겨 웃고 또 웃고,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미친 듯이 웃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