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 - 파트 1

단편소설

by 물개사랑

“지금 몇 시야?”

수정의 물음에 준혁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탁상시계의 숫자가 아직 완전히 초점을 맺기 전, 그는 이미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알고 있었다. 12월 24일. 전날 밤의 설렘이 채 가라앉지 않아 머릿속은 오히려 묵직하고 흐릿했다.

“벌써 열 시가 넘었어. 슬슬 일어나야지.”

그의 목소리에 수정은 이불 속에서 크게 기지개를 켰다. 커튼 틈으로 스며든 아침 햇살이 방 안을 조심스럽게 채웠다. 투명한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쪽은 포근했고 바깥은 분명히 차가워 보였다. 햇살의 온기가 공기 위로 아지랑이처럼 올라왔다.

수정은 침대 옆에 받아 두었던 물을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라디오를 켰다. 이 시간대에 듣는 음악은 언제나 조금 더 감미롭게 느껴졌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라서일까. 그녀는 한겨울에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빨간 장식의 크리스마스를 좋아했다. 올해는 장식을 꺼내지 못했지만, 벽에 늘 걸려 있는 노란 조명 장식이 그 아쉬움을 대신하고 있었다. 조명을 켜는 일은 하루를 여는 작은 의식이었다. 이 행위 하나로 하루가 시작된다고 믿는 것처럼.

준혁은 부스스한 머리로 침대에 누운 채 밤사이의 새 소식을 들었다. 얼마 전 구입한 침대는 그들이 잠든 동안의 세계를 정리해 차분한 음성으로 전해 주었다. 그의 관심사는 늘 비슷했다. 밤새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경제 상황, 시장의 흐름.

“이때엔 산타 랠리가 와야 하는데…….”

예년과 다른 시장 상황에 준혁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침대는 이미 다음 뉴스로 넘어가 있었다. 그 순간, 눈이 조금쯤 내려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예전처럼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이제 일어나세요.”

수정이 다가와 말했다. 모닝 키스와 함께 전해지는 체온이 준혁의 몸을 감쌌다. 그 온기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익숙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잖아요. 그냥 넘길 수는 없죠.”

준혁은 이를 닦으며 잠시 생각했다. 배달 음식이 떠올랐다가 곧 사라졌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직접 만들고 싶었다.

“여보야, 오늘은 내가 요리할게. 조금 있다가 같이 장 보러 가자.”

수정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처럼 환하게 웃었다.

밖에는 밤새 눈이 내려 있었다. 예전엔 눈 오는 크리스마스를 많은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렸지만, 이제는 겨울 풍경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오늘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햇살은 눈 위에서 고운 가루처럼 부서졌다. 이보다 더 완벽한 크리스마스이브를 상상하기 어려워 보였다.

라디오에서 마침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원하는 노래를 언제든 골라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된 지 오래였지만, 수정은 여전히 라디오를 좋아했다. 어떤 곡이 나올지 모른다는 점, 그 우연이 주는 설렘 때문이었다. 준혁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함을 벗어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식이었으니까.


눈을 밟는 발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만들었다. 동네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코도, 입도 제대로 없는 눈사람이었다.

“당근이라도 있으면 코 달아 줄 텐데.”

“대파 꽂아 줄까?”

둘은 별것 아닌 말로 웃었다.

작은 마을 가게는 입구부터 크리스마스로 가득했다. 반짝이는 장식과 커다란 트리, 잔잔한 캐럴. 공간 전체가 느리게 숨 쉬는 것 같았다. 준혁은 잠시 그 분위기에 잠겼다.

양파, 마늘, 표고버섯, 바지락. 머릿속에서는 이미 올리브 오일이 팬 위에서 조용히 데워지고 있었다. 수정은 익숙한 손짓으로 바지락을 골랐다. 이 가게의 동선을, 이 계절의 공기를,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아까 보았던 눈사람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수정은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저녁 식사는 봉골레 파스타였다. 와인에는 과일 향이 가득했고, 크리스마스 재즈의 아름다운 선율이 방 안을 채웠다. 둘은 잔을 부딪치며, 사랑스러운 밤에 흥을 더했다.

늦은 밤 영화는 늘 그렇듯 끝까지 가지 못했다. 수정은 중간쯤에서 잠들었고, 준혁은 그녀를 깨워 조심스레 침실로 데려갔다. 커튼 사이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방 안은 조용했고, 하루는 무사히 접힌 듯 보였다.

잠들기 직전, 침대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김준혁, 제조번호 XLBHFJ1734, 이상 없음.”

“이수정, 제조번호 YJFHBL4371, 이상 없음.”

준혁은 그 말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음성은 마치 오늘이 처음이 아닌 것처럼 너무도 익숙하게 들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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