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이 소설의 내용은 이전과 같은 것으로 느끼실 수 있으나 다른 내용이고, 의도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파트 4까지 읽으시면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확인하고 싶어 하실 겁니다)
“지금 몇 시야?”
수정의 물음에 준혁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탁상시계를 곁눈질했다. 숫자는 또렷했고, 의미도 분명했다. 오늘은 12월 24일이었다. 이상하게도 달력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벌써 열 시가 넘었어. 슬슬 일어나야지.”
말을 하고 나서, 그는 잠깐 멈췄다. 방금 한 말이 어쩔 수 없이 입에 익은 문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유를 찾으려 하자 그 감각은 곧 사라졌다.
수정은 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이다가 크게 기지개를 켰다. 커튼 사이로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눈부시고, 맑았다. 방 안은 따뜻했고, 유리창 밖은 차가워 보였다. 그 경계는 언제나처럼 조용했다.
수정은 침대 옆에 놓인 물컵을 집어 들었다. 컵은 이미 그 자리에 준비되어 있었다. 물을 마시고, 라디오를 켰다. 이 시간대에 시작되는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수정은 자연스럽게 벽 쪽으로 손을 뻗어 노란 조명 장식을 켰다. 불빛이 들어오자 방 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 조명을 켜는 순간이 하루의 시작이라는 사실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준혁은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 익숙한 천장, 익숙한 침대. 침대는 최신 정보를 낮은 음성으로 전했다. 어조는 차분했고, 내용은 어제 들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 시장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였고……”
“이때쯤이면 산타 랠리가 와야 하는데.”
말을 내뱉고 나서 준혁은 잠시 침묵했다. 자신이 왜 그 말을 했는지 곧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침대는 그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다음 뉴스를 이어 갔다.
준혁은 문득 창밖을 떠올렸다. 눈이 왔을까. 아마 왔을 것이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일어나세요.”
수정이 다가왔다. 모닝 키스와 함께 전해지는 체온이, 오늘도 변함없이 따뜻했다. 준혁은 그 온기가 좋았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잖아요.”
“알아.”
“그냥 보낼 수는 없죠.”
준혁은 세면대로 향하며 잠시 생각했다. 배달 음식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오늘은 직접 만들고 싶었다. 정확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 선택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조금 있다가 장 보러 갈까?”
“응.”
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는 여전했고, 햇살은 커튼 틈에서 같은 각도로 들어오고 있었다.
밖은 밤새 눈이 내려 있었다. 눈은 고르게 쌓여 있었고, 햇빛에 반사되어 밝았다. 예전처럼 특별한 풍경은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괜찮아 보였다.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수정은 그 노래를 잠시 듣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듣는 곡 같았지만, 후렴이 시작되자 묘하게 익숙하게 느껴졌다. 곡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눈을 밟는 발소리가 리듬을 만들었다. 서걱, 서걱. 동네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눈, 코, 입이 어설픈 눈사람이었다.
수정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당근… 있었나?”
“뭐?”
“아니야.”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작은 마을 가게는 여전히 크리스마스로 가득했다. 반짝이는 장식, 커다란 트리, 잔잔한 캐럴. 모든 것이 어제와 같았다. 아니, 같아 보였다.
준혁은 양파와 마늘을 집어 들었다. 표고버섯, 바지락. 손은 망설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요리가 완성되어 있었다. 수정은 말없이 해산물 코너로 향했다. 바지락 두 봉지를 집어 들었다. 어제도 그렇게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곧 사라졌다.
돌아오는 길, 눈사람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아까 보았던 그 자리였다. 같은 모습이었다. 수정은 잠시 눈사람을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저녁 식사는 봉골레 파스타였다. 와인은 붉었고, 음악은 재즈였다. 맛은 좋았다. 수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먹었다. 다만, 그녀는 접시를 내려놓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오늘 파스타….”
“응?”
“아니야. 맛있어.”
늦은 밤 영화는 여전히 끝까지 가지 못했다. 수정은 중간쯤에서 잠들었고, 준혁은 그녀를 깨워 침실로 데려갔다. 그 과정마저도 이상할 정도로 매끄러웠다.
불이 꺼지고, 커튼 사이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방 안은 조용했다.
잠들기 직전, 침대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이수정, 제조번호 YJFHBL4371, 이상 없음.”
잠시 후, 이어서……,
“김준혁, 제조번호 XLBHFJ1734, 이상 없음.”
말의 순서는 바뀌었지만, 그 사실을 의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