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 - 파트 3

단편소설

by 물개사랑

(이 소설의 내용은 이전과 같은 것으로 느끼실 수 있으나 다른 내용이고, 의도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파트 4까지 읽으시면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확인하고 싶어 하실 겁니다)


“지금 몇 시야?”

수정의 목소리에 준혁은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탁상시계를 봤다. 숫자는 또렷했고, 시간도 틀림없었다. 열 시를 조금 넘긴 시각. 12월 24일. 그는 시계를 보는 데 평소보다 약간 더 시간이 걸렸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열 시 조금 넘었어.”

말을 하고 나서, 준혁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방금 그 문장이 처음 나온 말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서, 언제 말했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애써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침은 생각을 많이 하기엔 아직 이르니까.

수정은 이불 속에서 몸을 말았다가 기지개를 켰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방 안은 포근했다. 유리창 너머의 세상은 차갑고 고요해 보였다. 그 경계는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굳이 의식할 이유가 없었다.

수정은 물컵을 집어 들었다. 컵은 비어 있지 않았다. 물을 마신 뒤, 라디오를 켰다.

“……,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진행자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배경 음악은 잔잔했다. 수정은 벽 쪽으로 손을 뻗어 노란 조명 장식을 켰다. 불빛이 들어오자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그 순간, 수정은 아주 짧게 멈칫했다.

‘이거…… 어제도 그랬던가?’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조명은 켜졌고, 하루는 시작되고 있었다.

준혁은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대는 밤사이의 소식을 낮은 음성으로 전했다. 경제 뉴스, 시장 흐름, 숫자들. 내용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어제라는 말이 왜 떠올랐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이때쯤이면 산타 랠리가 와야 하는데.”

말을 뱉자마자 준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 말을 했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냥, 해야 할 말 같았다. 침대는 그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다음 소식으로 넘어갔다.

준혁은 문득 창밖을 떠올렸다. 눈이 왔을 것이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이제 일어나세요.”

수정이 다가와 말했다. 모닝 키스가 이마에 닿았고, 익숙한 체온이 전해졌다. 그 온기는 여전히 좋았다. 다만, 준혁은 그 따뜻함을 느끼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시감을 함께 느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잖아요.”

“응.”

“뭔가 해야죠.”

준혁은 세면대로 향했다. 거울 속의 얼굴은 평소와 같았다. 칫솔을 입에 물며 그는 잠시 고민했다. 배달 음식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오늘은……, 내가 해야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밖은 역시 눈으로 덮여 있었다. 눈은 고르게 쌓여 있었고, 햇살에 반사되어 눈부셨다. 예전만큼 특별한 풍경은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이 풍경이 꼭 필요해 보였다.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수정은 걷다가 잠시 걸음을 늦췄다. 후렴이 시작되자, 그녀는 무심코 따라 흥얼거릴 뻔했다. 가사를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닌데, 멜로디가 너무 익숙했다.

“이 노래…….”

“어때?”

“좋아서.”


눈을 밟는 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다. 서걱, 서걱. 동네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눈사람은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수정은 걸음을 멈췄다.

“여보야.”

“응?”

“우리……, 여기 전에 지나온 적 있지 않아?”

준혁은 잠시 생각했다.

“자주 다니잖아.”

“그렇지?”

수정은 웃으며 다시 걸었다. 하지만 한 번 떠오른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작은 마을 가게는 여전히 크리스마스로 가득했다. 반짝이는 장식, 커다란 트리, 잔잔한 캐럴. 모든 것이 너무 정돈되어 있어서, 오히려 손대지 않은 무대처럼 느껴졌다.

준혁은 양파와 마늘을 집어 들었다. 손은 망설이지 않았다. 표고버섯, 바지락. 머릿속에서는 요리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미 여러 번 해 본 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 눈사람이 다시 보였다. 같은 자리, 같은 표정. 수정은 눈사람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 눈사람… 아까랑 똑같지 않아?”

“눈사람은 원래 잘 안 변하잖아.”

“그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딘가 개운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봉골레 파스타였다. 맛있었다. 와인은 적당히 부드러웠고, 재즈 음악은 아름답게 공간을 채웠다. 그런데 수정은 몇 입 먹다가 손을 멈췄다.

“여보야.”

“응?”

“이거……, 요리, 예전에도 먹어본 것 같아.”

준혁은 웃었다.

“내가 자주 해 주잖아.”

“그렇긴 한데…….”

그녀는 말을 끝맺지 않았다.

늦은 밤 영화는 여전히 끝까지 가지 못했다. 수정은 중간쯤에서 잠들었고, 준혁은 그녀를 깨워 침실로 데려갔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 익숙해서, 준혁은 문득 자신이 미리 알고 있었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이 꺼지고, 커튼 사이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잠들기 직전, 침대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김준혁, 제조번호 XLBHFJ1734, 이상 없음.”

“이수정, 제조번호 YJFHBL4371, 이상 없음.”

그 말이 끝난 뒤, 수정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야.”

“응?”

“혹시……, 우리 오늘, 처음 사는 하루 맞지?”

준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침대는 그 질문을 기록하듯,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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