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가을 공기는 유난히 달콤했다. 아침 햇빛이 아파트 단지의 단풍잎을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나는 그 분위기에 취해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사실은 긴장으로 어깨가 평소보다 한 3cm는 더 올라가 있었다. 오늘은 여자친구와 첫 단풍 여행이었고, 무엇보다도 면허를 딴 지 딱 1주일 된 내가 직접 운전하는 첫 장거리 드라이브 날이었다. 렌터카 사무실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땀이 송골송골 배어 나왔다. 면허증은 아직 새것 냄새가 나는 기분이었고, 나는 차 키를 세 번이나 떨어뜨리며 괜히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왜 이렇게 긴장해 있어?”
“아니야… 그냥 오늘 단풍이 얼마나 예쁠까 생각해서…”
여자친구는 나를 빤히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렌터카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초보운전 스티커를 꺼내 들고 자연스럽게 뒤창문에 착 붙였다. 나는 괜히 기어봉을 잡는 척하며 초보 티를 감추려 했지만 이미 손바닥엔 땀이 차 있었다.
“기어 변경 헷갈리면 내가 도와줄까? 아직 1주일밖에 안 됐잖아.”
“그 정도는 알아! 일주일이나 됐어!”
큰소리쳤지만, 사실 마음속에서는 ‘브레이크는 왼쪽 맞지…? 맞나…?’를 반복 점검하고 있었다. 시동 켜기 전에 브레이크 밟았는지 두 번 확인한 건 비밀이다. 여자친구는 조수석에 앉자마자 내비게이션 모드로 돌입했다. 목소리 톤이 절반쯤 기계화된 듯했다.
“좋아, 내가 오늘 인간 내비게이션 할게. 오른쪽에 차 오고, 앞에 신호 바뀌고, 저 차선 조심하고… 내가 말할 때 그냥 그대로 하면 돼.”
“응… 알았어…”
자기는 면허 딴 지 2주일 밖에 안 되었으면서. 물론… 일주일의 두 배이긴 하지. 수학적으로는 완벽한 우위다.
도심으로 들어가자마자 혼란이 시작되었다. 신호등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배달 오토바이와 킥라니는 예술처럼 차 사이를 비집고 다녔다. 또한, 깜빡이 없이 차선을 바꾸는 차량들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여자친구는 그때마다 빠르게 안내했다.
“방금 차선 넘었어!”
“어? 아… 그런가?”
“속도 좀 줄이고! 앞에 차 간다! 저기 트럭 조심하고!”
“응… 응… 알았어…”
나는 마치 “응… 응…” 밖에 못 말하는 고장 난 인형 같았다. 운전대 위로 차오르는 땀방울이 보일 정도였고, 땀이 브레이크 페달까지 흘러들어 갈까 걱정될 지경이었다. 이 아름다운 가을 햇살보다 뜨거운 건 내 손바닥뿐이었다. 순간 느껴졌다. 오늘 하루가 평탄하게 흘러갈 리 없다는 진한 예감이 등골을 타고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
도심에 깊숙이 들어설수록 차들은 서로 먼저 가겠다는 듯이 앞뒤로 들러붙었고, 나는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심장이 같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초보 운전 스티커가 붙어 있음에도 뒤차는 어느새 바싹 붙어 경고하듯 헤드라이트를 깜빡였다. 나는 도로 위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앞차 너무 가까워. 속도 좀 맞춰!”
“맞추고 있어… 나도 알아…”
“브레이크 살살! 너무… 아, 방금 건 좀 세게 밟았어!”
“아니,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여자친구 말은 친절이 70%, 잔소리 30%의 묘한 비율이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표정을 관리하려 애썼다. 하지만 나도 긴장으로 목이 뻣뻣해지고 있었고, 작은 흔들림에도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서 있었다.
“아까 오른쪽 깜빡이 켰는데 왜 왼쪽 차선으로 갔어?”
“그건… 왼쪽이 더 안전해 보여서…”
“그럼 깜빡이는 왜 오른쪽을 켜?”
“나도 몰라!! 네가 그러니 더 혼란스러워!!”
아차……, 나도 모르게 버럭 해버렸다. 순간 차 안 공기가 묘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싸움은 아니었다. 마치 소규모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의 대기 같은 느낌이었다. 문제는 나도 생각보다 더 예민해져 있었고, 여자친구도 ‘초보니까 더 알려줘야 한다’는 책임감인지 잔소리인지 모를 말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와중에도 도로는 우리에게 좀처럼 여유를 주지 않았다. 버스는 거대한 벽처럼 옆에서 미는 것 같았고, 택시는 신호가 바뀌기 전 작은 틈만 생겨도 번개처럼 앞질러갔다. 나는 그 틈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던 차선을 겨우 잡아 유지했다.
“여기서 400미터 직진이래. 그다음에 우회전이라서 차선 미리 바꿔야 해.”
“알았어… 근데 400 미터면 아직 좀 남았잖아…”
“아니야, 금방 지나가! 400미터가 얼마나 짧은지 몰라? 그냥 바꿔!”
“잠깐만! 옆에 차 오잖아!!!”
여자친구는 조수석에서 몸을 바싹 웅크렸다가 다시 슉— 하고 내 쪽으로 기울며 도로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 모습이 꼭 자기 눈앞에 HUD라도 달려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걸 보며 살짝 억울함이 올라왔다. 나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계속 뭔가 부족한 학생처럼 지적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 도심의 복잡함은 그저 예고편에 불과했다. 도로 끝자락에서 드디어 등장하는 그 거대한 원형의 괴물, 회전교차로가 서서히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계속)